[100년 달성 스토리로드] ⑤현풍면

입력 2015-10-20 01:00:05

아전의 가렴주구 심한 玄豊, '교화의 땅' 바람 일으키려 玄風으로

현풍면 소재지에는 조선시대 현감 박순, 이광진, 김옥, 김광태와 군수 신현구, 홍필주, 관찰사 엄세영, 서귀순 등 60여 기의 선정비가 남아 있어 현풍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풍면 소재지에는 조선시대 현감 박순, 이광진, 김옥, 김광태와 군수 신현구, 홍필주, 관찰사 엄세영, 서귀순 등 60여 기의 선정비가 남아 있어 현풍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풍면 상리의 석빙고. 길이 11.5m, 높이 2.5m, 너비 4m 규모로 1980년 보물 제673호로 지정됐다.
현풍면 상리의 석빙고. 길이 11.5m, 높이 2.5m, 너비 4m 규모로 1980년 보물 제673호로 지정됐다.

현풍면은 비슬산 북쪽 능선에서 서쪽으로 옥포, 논공, 유가 등 3개 읍면의 경계를 이룬 기점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남쪽으로 현풍의 주산인 봉산(鳳山'288m) 기슭에 7개의 나지막한 산 밑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해 내려오는 구천(龜川)을 사이에 두고 마을을 이루고, 외각지 마을은 대니산(戴尼山) 능선을 따라 구지면 경계를 긋고 있다. 비슬산 남단에서 발원한 물은 달창지로 흘러와 서북으로 유가, 구지를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되면서 커다란 현내들을 펼치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과 국도 5호선이 북에서 남으로 뚫려 있고, 진주로 가는 지방도는 차천(원교리)의 국도 5호선에서 서쪽으로 향해 뻗어 있다.

현풍면은 상리(上里), 중리(中里), 하리(下里), 부리(釜里), 성하리(城下里), 원교리(院橋里), 자모리(自慕里), 오산리(午山里), 지리(池里), 대리(大里), 신기리(新基里) 등 11개의 법정리와 25개의 행정리가 있다.

◆달성군의 뿌리 현풍(玄風)

달성군민들은 달성군을 '대구의 뿌리'라 하고, 현풍사람들은 현풍을 '달성군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 현풍은 조선시대까지 독립된 현(縣)으로 현감이 파견된 고을이었다. 지금까지 현풍사람들은 이를 대단한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현풍에는 달성군내 다른 읍면과는 달리 고을 현감이 호령하던 동헌터가 있고, 공자 등 성현들에게 제를 지내는 향교,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 조정에 얼음을 공급해온 석빙고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게다가 주로 조선시대 때 현풍현의 현감과 군수, 지역을 관할하던 관찰사의 선정비, 열녀와 정려비 등 약 60여 기의 비석들이 현풍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현풍은 신라 때 추량화현(推良火縣)이었고, 경덕왕 때 현효(玄驍)로 고쳐 화왕군(火王郡)에 속하게 했다. 고려 현종 때는 지금 이름으로 고쳐 밀양군(密陽郡)에 속했다.

현풍현은 1895년(고종 32)과 1896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상북도 현풍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달성군에 편입되고, 1995년 달성군이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들어감에 따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풍'은 본래 '玄豊'으로 검을 '玄'에 풍년 '豊'이었다. 다시 그 풍자(字)는 豊에서 風으로 바뀌어 '玄風'으로 바람과 관련된 땅이름의 고을이 됐다.

여기에서 바람(風)은 대기권에서 나타나는 자연현상(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 아니고 교화(敎化)의 울려 퍼짐을 의미하는 바람(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 현풍의 객관(客館) 남쪽에 앙풍루(仰風樓)라는 현액을 가진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이첨(李詹)이 앙풍루에 적은 기문에 의하면 "바람이 어떤 물건에 부딪혀 물체가 요동하는 것처럼 교화(敎化)가 이뤄지고 임금이나 관(官)의 교화가 미치는 곳마다 도의심이 바람처럼 확산됐으면 한다는 뜻에서 '풍(豊)자를 풍(風)자'로 한 것"이라고 했다.

◆앙풍루(仰風樓)가 전하는 현풍의 전설

기문에는 현풍이 밀성부(밀양)에서 독립하게 된 배경도 밝히고 있다. 당연히 현풍에 감무가 파견돼야 하는데도 밀양에 예속된 현이었기 때문에 밀양의 감무가 현풍을 겸직하는 식으로 이뤄져 그 폐해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 번씩 현풍으로 출장 오는 밀양의 감무는 토착 향리를 앞세워 주민들을 상대로 능멸(凌蔑'남을 업신여김), 모만(侮慢'자기만 잘난척함), 침어(侵漁'침범하여 뺏음)했다.

또 국가에서 필요로 했던 조세(租稅)와 역(役)을 징발할 때는 주민들이 현풍에서 밀양까지 100리의 길을 왕래해야 해 주민들은 피폐하고 논밭은 진황(陳荒'오래 묵어서 거칠어짐)했지만 겨우 현명(縣名)만 유지했다.

이처럼 현풍은 본래 아전들의 가렴주구가 심한 피폐의 땅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명예를 씻고 새로운 교화의 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주민들의 바람(風)이 결실을 맺었고, 이를 기념해 풍(風)을 강조하는 앙풍루(仰風樓)를 세우게 됐다. 현풍 사람들은 '풍'(風) 자의 의미를 되새겨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또다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게다가 현풍의 사전적 의미로는 '깊고 그윽한 풍취'를 뜻한다. 현(玄)이란 검다는 원뜻을 지닌 글자다. 미묘하다든가, 깊다든가, 현묘하다는 등의 뜻이 있다. 사신(四神)의 수호신 가운데 현무(玄武)는 북쪽을 지키는 신이다. 북은 음양오행에서 물(水)에 해당한다.

결국 지명이 갖고 있는 뜻을 도참식으로 해석한다면 현풍(玄風)은 북쪽에서 물기운이 몰려 온다는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마른 대지를 축인다. 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땅은 아무런 생명도 살지 못하는 불모지인 즉 사막이 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 현풍에는 대구 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되고 있다. 일터와 주거지가 어우러져 '직주근접'의 자족도시로 건설 중인 테크노폴리스 사업이 완료되면 고용 유발 효과 8만4천 명, 경제 파급 효과 3조5천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6조4천억원에 달하는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게 된다.

◆대니산의 노총각 바위와 각시바위

현풍의 대니산(戴尼山'408m). 정상은 현풍면 오산리에 있고 능선은 서북방향으로 뻗어 낙동강이 곡류하는 구지면 도동리에서 멈춘다. 북쪽 낙동강이 곡류해 대니산을 휘감아 남쪽으로 흘러간다. 산세는 삼각형의 형상이 뚜렷하고 주변은 평지로 현풍면 일대의 전망이 뛰어나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전국의 동호인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니산에는 비구니들만 수도하다가 빈대가 너무 많이 끓어 아예 절을 불태우고 떠나갔다는 귀비사 터가 있다. 귀비사의 평평한 절터를 중심으로 세 개의 능선으로 갈라져 있다. 남쪽 능선에는 4m 높이의 각시듬(벼랑), 맞은편 북쪽 능선에 각시듬을 마주한 높이 3m의 신랑듬이 있다.

그리고 중앙능선에 자리 잡은 높이 5m, 길이 20m 웅장한 병풍듬이 있고, 그 아래 허탈감에 젖은듯한 높이 2m의 중신아비듬이 있다. 이들은 억겁의 세월 속에서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산아래 원당 마을에 찢어질 듯한 가난 속에 조실부모하고 나무를 팔아서 연명하던 노총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마음씨 착한 노총각을 측은히 여겼다. 그러던 어느 늦은 봄날 노총각은 여느 때처럼 굶주린 배를 안고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산으로 올랐다.

나무를 한 짐 다한 노총각은 양지바른 바위 밑에서 살며시 잠이 들었다. 그때 백발의 산신령이 꿈에 나타났다.

"너의 착한 마음씨가 갸륵하여 이제 내 너를 장가보내야겠다. 내일 이 자리에 오면 절세미인을 동반한 중신아비가 너를 반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혼례를 치르고 아이를 셋 낳을 동안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마라." 이 말을 남기고 산신령은 홀연히 사라졌다.

꿈을 깬 노총각은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왔으나 그날 밤은 너무 신기하고 즐거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노총각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어제 그 산으로 내달렸다. 산신령 말대로 남쪽 능선에서 중신아비가 너무나도 예쁜 처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사랑을 다하지 못한 노총각의 비애

꿈이런가 생시런가 노총각은 자신의 다리를 꼬집어 보기도 했지만 현실이었다. 그들은 혼례날짜를 정하고 헤어졌다. 혼례장소도 그 자리에서 하기로 했다. 일각이 여삼추. 손꼽아 기다리던 혼례일이 돌아왔다. 새신랑으로 곱게 단장하고 나선 노총각에게 이웃사람은 어쩐 일인지 싶어 궁금해하고 너도나도 그 연유를 묻기 시작했다.

노총각은 그때 산신령과의 약속을 까마득히 잊고 "저 오늘 장가가는 날입니다"하고는 단숨에 산으로 올라갔다. 대니산 가운데 능선에는 병풍이 둘러쳐져 있고 중신아비는 와 있는데 정작 혼인할 각시가 보이지 않았다.

노총각은 이상해서 중신아비에게 물었더니 남쪽 능선을 가리키며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하며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그 위에 각시가 서 있었다. 그제야 노총각은 집을 나서며 이웃사람들에게 "이제 장가를 들게 됐다"고 인사한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토록 당부하던 산신령의 뜻을 저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그때 오색 무지개가 일고 하늘에서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봐라. 내 너의 심성이 하도 착해 장가보내 주려 했지만 이젠 물거품이 됐구나. 너의 못다 한 삶은 바위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미완성으로 살아야겠다." 이 말을 남기고 산신령은 무지개를 타고 드높은 하늘로 사라졌다. 그러자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뇌성벽력이 일더니 노총각과 각시, 중매쟁이, 병풍이 모두 돌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도 대니산에는 남쪽 능선의 각시듬과 북쪽 능선의 신랑듬은 못다 이룬 사랑을 그리며 마주 보고 섰고, 중앙능선의 병풍듬 아래 중신아비듬은 노총각에게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며 세월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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