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탁(濕拓)
-송재학(1955~ )
전날 밤은 흐려서 습탁이 맞춤이었다 달은 이미 흥건히 젖었다 권층운의 아귀를 슬며시 들추니 젖는다는 것은 달의 일상이다 구름의 일손을 빌려 달빛 몽리면적까지 화선지를 발랐다 달이 그새 참지 못하고 꿈틀거리며 한 마장 훌쩍 미끄러진다 잠 이루지 못하는 새들도 번갈아 달빛 속을 들락거린다 물이 뚝뚝 묻어나는 부레옥잠 대궁으로 화선지를 두들기자 달의 숨결이 잠시 멈춘다 그 위에 달만큼 오래된 유묵을 먹였다 뭉툭한 솜방망이를 가져온 것은 뭉게구름이다 다시 살살 두드리고 부드럽게 문지르고 공글리자, 먹을 서 말쯤 삼킨 시커먼 월식(月蝕)이다 칠흑이다 달이 탄식하기 전 화선지를 떼어내 새들의 긴 빨랫줄 항적에 널었다 아침부터 달의 탁본이 걸렸다 모서리 없는 습탁이다 먹이 골고루 묻지 않아서 속빛무늬로 얼룩덜룩하지만 잘 말랐다 건탁(乾拓)의 때깔도 보고 싶다
(전문. 『검은색』. 문학과 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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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를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그리고 그 시인이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는 일은 질투 나는 일이긴 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시인으로부터 직접 시집을 건네받고 이 시를 펼쳤을 때 나는 뭔가 분위기 있는 그림을 받아든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수십 번 읽고 나서야, 마치 이 시의 제목과 내용처럼 탁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그림. 시인은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이제 우리는 보다라는 이 하찮은 낱말의 뜻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그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부재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수단이다"고 말 한 적이 있다. 이 봄은 나의 부재를 통해 세계를 드러내는, 혹은 세계의 눈이 되고자 하는 작업이 아닐까?
시를 따라가 보자. 흐린 밤, 검은 먹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다. 달은 검은 구름 사이를 벗어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새들이 그 풍경 위를 날아간다. 부레옥잠이 떠 있는 연못 옆에서 오래 달을 올려다본다. 다음 날 아침 그 달이 아직도 떠 있다. -이것이 이 시가 자연적 시선으로 보는 풍경이다. 그런데 시인은 달을 보기 위해 자연적 시선이 아니라 탁본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현상학적인 방법을 전개한다. 달을 습탁하면서 달을 보는, 스스로를 지우면서 스스로 달이 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달은 물의 상상력이 되고 물은 달의 거울이 된다. 시인은 그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든 달은 칠흑의 달이다. 그것도 먹이 골고루 묻지 않아 얼룩덜룩한 달이다. 그러나 그 얼룩덜룩함이, 그 부재가 존재를 존재답게 한다. 그 부재의 틈이 바로 세계의 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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