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 2 짐승-3, 4 인간

입력 2015-10-15 02:00:01

안티스테네스는 "플라톤은 자만하고 있다"고 늘 비웃고 있었다. (중략) 또 어느 때 그는 와병 중인 플라톤을 찾아가 플라톤이 그 안에 토하고 있었던 세숫대야 속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곳에 담즙은 보이는데 자만은 보이지 않는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중

일반적으로 인간이 아닌 짐승의 정신은 쾌(快)'불쾌(不快)만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쾌와 불쾌라는 단어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쾌가 독일어(칸트의 언어)로 루스트(Lust)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그러면 이 단어는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욕망, 애호, 쾌감, 환희 등으로 번역된다. 이게 뭔가? 단어의 발음은 하나인데 뜻은 여러 가지이다. 왜 인간은 한 발음에 한 가지 뜻만이 아닌 여러 가지 뜻을 사용하는 것인가?

별별 생각이 들면서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다시 가보자. 짐승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자신의 감정을 쾌'불쾌 두 부분으로 구분한다. 이분법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과 짐승의 구분점이 나타난다. 짐승이 숫자적으로 1과 2라는 이분법적 사고, 즉 쾌와 불쾌를 구분한다면, 인간은 1과 2라는 숫자 외에 다른 부분도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순차적 사고 속에서 인간은 흑백논리(1과 2) 이외에 흑백이 나온 이유를 찾는다. 그 이유가 3이라는 숫자이다. 그리고 그 이유의 원인을 찾는다. 이것이 원인, 즉 4라는 숫자이다.

다른 표현으로, 1과 2라는 숫자는 평면적인 사고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3은 3차원적인 사고 즉 공간감각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4는 공간감각에 더해서 시간의 개념이 들어간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나타난다.

이제야 겨우 이해가 간다! 바로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시공(時空)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정신은 바로 인간이 아닌 짐승의 정신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 때문에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기억'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기초로 맨 위의 대화를 다시 보자. 바로 우리의 토사물에서 자만심을 찾아보자. 혹시 전문가라는 자만심으로 비전문가 집단에 대해서 3과 4가 없다고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반대로 그 무시당한 짐승들의 반란으로 자칭 인간이라는 집단이 오히려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문화적으로 '혹성탈출'이 아닌 '대구탈출'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일차적으로 모두 짐승이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짐승에서 인간으로 서로 진화를 해보자. 3차원적, 4차원적 시각으로 친절한 짐승들끼리 대구를 인간이 사는 곳으로, 즉 예술, 문화 그리고 철학이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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