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원을 보상해 주면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하겠다"는 제의가 나왔다. 훈민정음 상주본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고서적 수집'판매상 배익기 씨가 한글날을 맞은 온 나라에 던진 폭탄선언이다. 배 씨는 "훔친 것도 아니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국보급이라고 해서 거저 내놓으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조원에 이르는 상주본의 가치를 고려할 때, 보상가가 최소 1천억원은 되어야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배 씨는 이 같은 뜻을 문화재청에도 전했다. 문화재청은 배 씨의 제의를 두고 '보상 범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가 환수를 위한 보상 작업 준비가 사실상 시작됐음을 시사했다. 배 씨는 또한 자신이 도둑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점과 재판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실물도 없는 해례본을 국가에 기증하는 일까지 벌어진 데 대한 정서적인 반감도 드러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해례본을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귀중한 문화재를 담보로 일확천금을 노리며 국민과 정부를 겁박하고 있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들먹이며 국가를 상대로 거래를 하려 드는 배 씨의 언행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며, 분노마저 느끼는 국민도 적잖다. 그러나 훈민정음 상주본 문제는 복잡한 일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해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배 씨는 상주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실정법상의 소유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이 상주본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지 못한 이상 배 씨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상주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보다 가치가 높은 판본으로 판정된 문화재이다. 상주본을 세상에 공개하고 후손들에게 길이 보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문화재청은 배 씨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그의 명예 회복을 전제로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 배 씨 또한 국민 정서와 훈민정음 상주본이 겨레의 문화유산임을 감안해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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