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책!] 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입력 2015-10-10 02:00:04

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 로런스 부시 지음 / 이종삼 옮김 / 한울아카데미 펴냄

만약에 동네마다 신호등 색깔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화폐로 지불하려 하거나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한다면? 쇠고기 한 근이 경기도에서는 400g이고 충청도에서는 1㎏이라면? 이런 황당한 질문들은 늘 도처에 있고 끊임없이 인간사에 작용하지만 평소에는 대체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무엇, 바로 '표준'의 존재를 드러내 준다.

표준은 우리의 생활에, 관계에, 생각에, 심지어 무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표준을 '현실을 만들어내는 레시피'에 비유하면서 표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즉 그것이 규범'관습'전통'법률 등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지닌 힘은 무엇인지,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을 어원에서부터 역사적 사례와 학문 간 논의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사한다. 이 책은 표준을 올림픽, 필터, 서열, 구분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각 유형의 특징과 상관관계 등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특히 근대화라는 이름의 물결이 세상을 휩쓴 지난 300여 년은 바로 표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이 물결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창조했다. 또 표준이 인간 사회와 권력의 산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윤리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저자는 표준에 대한 논의에서 대체로 이 문제가 회피되어왔음을 지적하면서 분석철학과 윤리학의 논의를 끌어와 표준의 윤리적 의미를 탐구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더 정의롭고 동정심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표준이 어떻게 사용되고 수정되고 또는 변혁되어야 하는지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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