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새론새평] 전문가의 오류

입력 2015-10-08 01:00:05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 제기

"20대의 MRI 사진 아니다" 판독 오류도

양승오 박사는 전문지식에 시야 좁아져

좌우 못 보고 앞만 달리는 말과 닮은꼴

"중권아! 근데 양승오 박사한테 돌팔이라고 했던 너의 발언. 언제 사과하느냐? 입 닦는 거니? 넌 다른 사람이 그리 하찮게 보이니? 너보다 학벌도 좋고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야. 말장난 석사 따위가 어디서 그리 말을 가볍게 하니. 빨리 사과해라."

양승오 박사는 박원순 시장의 아들 박주신이 MRI 사진을 바꿔치는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던 그분이다. 이분은 공개검증을 통해 의혹이 해소된 후에도 계속 같은 의혹을 제기하다가 결국 명예훼손으로 기소당한 바 있다.

어느 사회에나 독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 문제는 이 얼빠진 소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까지 기어이 그 바보들의 행진에 합류하고 말았다. 이들은 왜 그렇게 황당한 주장에 동조하게 된 것일까?

이들이 범한 것은 이른바 '전문가 오류'. 논리학에서는 이를 '권위에의 논증의 오류'라 부른다. 이 오류추론은 대개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1) X가 특정 분야에 대해 말을 했다. (2) X는 그 분야의 전문가다. (3) 고로 X의 말은 옳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댓글 속에서 '권위자'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박주신의 병역비리 의혹을 사실이라 믿는 근거는, 그 주장을 한 양승오 박사가 "석사 따위"보다 "학벌도 좋고", 무엇보다도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오류추론이다.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진위를 판단하지 않고 일단 수용부터 하곤 한다. 하지만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은 그저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해 온 사람들일 뿐, 그들이 반드시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까지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문가의 오류'가 대중만의 것이 아니어서, 때로는 전문가 스스로 '전문가의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 자신을 맹신한 나머지 "자신의 전문지식에 의해 시야가 좁아지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양승오 박사가 지금 그 함정에 빠져 있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에게 믿을 것은 오직 MRI 사진뿐, 그는 그 밖의 나머지 요소들은 아예 고려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

예를 들어 그의 말대로 박주신 씨가 MRI 사진을 바꿔치기한 게 사실이라 가정하자. 그럼 어떻게 되는가? 대한민국 병무청,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들, 거기에 입회한 기자들이 박주신 씨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집단으로 공모를 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런 상식적 물음에 양승오 박사는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왜? 그의 머릿속에는 애초에 이런 물음 자체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로서 가진 자신의 전문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외려 그의 시야를 좁혀 놓은 것이다.

눈가리개를 한 말은 좌우를 보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 앞으로 달리는 데에서는 말이야말로 최고의 전문가다. 하지만 그 말은 좌우를 보지 못하기에 자기가 달리는 방향이 정말 올바른 방향인지는 판단하지 못한다. 양승오 박사가 이 말을 닮았다.

마지막으로 왜 내가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를 '돌팔이'라 불렀는지 말하고자 한다. 그의 주장은 '박주신의 MRI 사진은 20대 젊은이의 것일 수 없다'는 전문가적 판단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달리 문제의 사진은 결국 박주신 씨 자신의 것으로 판명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가 논리적 오류만이 아니라 판독의 오류도 저질렀다는 것이다. 즉 그는 전문가의 오류를 저지르기 이전에 이미 영상의학의 '전문가로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돌팔이라는 다소 불경한 표현은 이 사실을 지적하는 짓궂은 방식으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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