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은퇴] 시골로 이사가고 싶은데 아내는…

입력 2015-10-08 01:00:05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활 반경이 집을 중심으로 좁아지게 됩니다. 특히 병과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거지는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으면서도 저렴한 생활비가 드는 주거플랜을 차근차근 세워보세요.

2년 전에 퇴직하고 지금은 친구 회사에서 일을 봐주며 약간의 용돈 벌이를 하면서 지내는 중년입니다. 요즘 고민은 시골로 이사하는 일입니다. 저는 도시에서 1, 2시간 거리에 있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이사해서 소박한 전원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한사코 지금 사는 곳을 떠나려 하질 않습니다. 몇 년째 이 문제로 많은 이야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결론을 내리기 어렵네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은퇴를 맞이한 중년부부가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주거 계획입니다. 나이가 들면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이사해서 생활비도 절감하고 자연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강해집니다. 하지만 의료기관과 문화시설이 멀어지고 도시보다 외로워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니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남편들은 대체로 전원생활을 선호하지만, 부인들은 반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부부가 의견을 일치시키기 어렵답니다.

현재 은퇴를 맞이하고 있는 중장년층들은 아직 구체적으로 주거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KB금융 경영연구소가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은퇴 후 이사하겠다는 의견이 48.9%로 나타났습니다. 은퇴 후 거주하고 싶은 주택 유형은 전원주택 43%, 아파트 31%, 단독주택 13%, 실버타운 2%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이 도시든 시골이든 자기 집에서 살기를 원하며, 노인전용시설이나 실버타운을 선택하는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그럼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할까요?

우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내 집에서 노후생활하기', 즉 영어로는 'Aging In Place'라는 현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적으로 장수시대를 맞이하면 '내 집에서 나이 들기'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노인 중 약 86%(AARP 조사결과)가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94%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고령자들이 몸이 불편해질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집을 안전한 생활공간으로 개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를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인데요, 고령으로 몸이 불편한 간병기를 맞이하게 되면 요양시설을 이용하기보다는 내 집을 마치 요양시설처럼 수리하여 계속 거주하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장치를 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 집안에서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계단을 경사로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방의 싱크대도 휠체어를 타고 조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수 있게 개조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원생활의 성공 요소로 노동, 자기계발, 친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꼽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도 은퇴후에 전원생활을 잘 하기란 상당히 어려운데요, 그중에서 성공한 케이스를 조사해보니 여유시간을 3등분하여 노동, 자기계발, 교류를 균형되게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작정 전원생활을 추구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기 쉬운 우리나라 중년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 중년들이 은퇴 후 체계적으로 주거플랜을 세울 때 고려할 사항을 몇 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주택의 과소비를 피해서 노후자금을 보완해야 합니다.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데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하지만 전원주택의 특징상 매매가 잘 되지 않습니다. 만약 노후자금이 부족해서 집을 팔아야 할 경우에는 매우 곤란해집니다. 은퇴 후에 이사한 다른 주거 대안들도 거래량 부진에 시달리고 있으며, 앞으로 고령화가 좀 더 심해지면 주택매매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은퇴 후 주거 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를 확보해야 합니다. 은퇴생활이 행복하려면 많은 사람들과 빈번한 접촉을 통해 사회적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지역주민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며, 취미 여가나 봉사와 같이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공동체가 있는 곳을 주거지로 마련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각종 편의시설에 가까운 곳일수록 좋습니다. 은퇴생활을 할 때는 문화, 의료, 학교, 여가 등 각종 복지시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야 합니다. 특히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편의시설을 가까이 두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하며, 고령이 되면 자동차 운전이 어려워지므로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모든 은퇴생활 단계의 변화를 충분히 고려해 주거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은퇴 이후 생활은 활동기, 회고기, 배우자 간병기, 배우자 홀로 생존기와 같이 여러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은퇴생활 각 단계마다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주거환경도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모든 단계에 고루 적합한 주거환경을 선택하시는 게 바람직합니다.

다섯 번째는 집을 새로 마련할 때는 가능하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야 합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점점 많은 고령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노후생활을 보내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정든 내 집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좋은 이웃과 왕래하는 은퇴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거실, 주방, 화장실, 현관, 계단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개조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노인가구 주택개조기준'을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도시에 작은 주택을 두고서 전원생활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보길 바랍니다. 아무리 전원생활을 잘하더라도 고령이나 몸이 불편해지면 병원이 가까운 도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평균적으로 남편 사별 후 홀로 10년 정도를 생활해야 하는 부인의 입장에서는 도시에 작은 주택이 있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시에 작은 주택을 마련해두고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수리해 놓는다면, 남편과 부인의 간병기에 거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이미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에서는 은퇴설계란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생활 반경이 집을 중심으로 좁아지게 되며, 병과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거지는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에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으면서도 저렴한 생활비가 드는 주거플랜을 차근차근 세워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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