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과도한 기부채납
지역 한 건설사 대표는 대구 A구청 때문에 말 못할 고민에 빠져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는데 구청이 지나친 기부채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파트 개발이익이 얼마나 될지 아직 계산도 안 된 상황에서 구청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기부채납을 요구하고 있다"며 "아예 개발을 포기할까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시행사 대표 B씨는 대형 상가 개발 제안을 받았지만 손사래를 쳤다. 해당 사업지가 무리한 기부채납 요구로 악명 높은 지방자치단체 관할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도를 넘는 기부채납 요구가 건설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건설사들은 기부채납 비용을 메우기 위해 아파트'상가 분양가를 올리고, 그 비용은 서민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건설인들은 "무리한 기부채납은 건설사 생존을 위협한다. 대구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 나쁜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어서 지속 가능한 건설 도시로서의 도약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했다.
◆지자체 노골적 손 벌리기…하청업체 꼭 찍어 정해
대구 A구청은 건설업계에서 악명이 높다. 사업 심의 과정부터 담당 공무원이 노골적으로 기부채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개발 규모에 따라 복지관, 주민센터, 수억원의 장학기금까지 요구하는 금액 구간이 정해지다시피 했다. 한 개발 사업자는 "A구청은 대구에서 장학금 받기로 유명하고 공무원이 세금 걷듯이 징수한다"며 "다 윗분(구청장)의 뜻이라고 한다"고 귀띔했다.
B구청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다. 상가 사업을 준비 중인 김모(55) 씨는 "상가 분양이 무리 없이 이뤄져도 기대 수익이 150억원이 채 안 되는데 구청은 100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부하라고 요구한다"며 "요구를 받아들이면 수익을 내기 어렵고, 거부하면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부채납 요구의 유형도 다양하다. 해당 사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부도 요구한다. 건물이나 장학금 등이 여의치 않으면 하청업체를 콕 찍어 내려보내기도 한다. 한 시행사 대표는 "아파트 사업 때 해당 지자체 요구에 따라 하청업체를 부랴부랴 바꾼 것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계획성 없이 받았다…무학터널 '불편 터널' 오명
공짜에는 반드시 대가가 뒤따른다. 무리한 기부채납은 여러 부작용을 낳는데, 가장 대표적 부작용이 분양가 상승이다. 실제로 덩치 큰 기부채납을 한 사업은 모두 분양가가 높았다.
범어도서관 등 수백억원 상당을 기부채납한 '두산 위브 더 제니스'는 당시 분양가가 1천만원을 훌쩍 넘었고, 무학터널을 대구시에 기부채납한 SK리더스뷰도 턱없이 비쌌다. 한 건설사 임원은 "시행사나 시공사 입장에서는 기부채납 금액만큼 분양가를 높일 수밖에 없다. 결국 회사 측은 분양률이 낮아져서 손해를 걱정해야 하고, 실수요자들은 높은 분양가를 떠안게 된다"고 했다.
공짜에 취해 계획성 없이 받은 기부채납도 골칫거리다. SK건설이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황금네거리 지하차도 대신 기부채납한 무학터널은 예산을 허비한 '불편 터널'이라는 오명만 안았다.
◆기업하기 '나쁜' 도시…기부채납 반환 소송까지
지자체의 이 같은 행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대구의 슬로건을 무색하게 한다.
애경그룹은 2012년 7월 '기부채납하기로 한 가족지원센터 무상 건립이 부당하다'는 진정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같은 해 정부가 지자체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주택 사업자에게 관행적으로 요구해 온 과도한 기부채납을 방지하기 위해 주택법을 개정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애경은 앞서 달서구 유천동에 'AK그랑폴리스' 아파트 건립 대가로 복지시설을 기부채납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결국 감사원은 무상 기부채납이 부적절하다며 애경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해 법원은 화해조정을 통해 건설사의 입장을 일부 인정해 토지만 기부채납하도록 했다.
두산 위브 더 제니스 시행사인 ㈜해피하제는 대구시 등을 상대로 770억원대의 기부채납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월 대구시와 수성구청의 부당한 압력으로 범어네거리 지하도로 및 범어도서관을 지어 기부채납한 만큼 건립 비용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건설사들의 볼멘소리에 지자체들은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과도한 개발이익 환수 차원에서 이뤄지는 기부채납은 결과적으로 도시 인프라를 위해 쓰인다. 지자체가 요구하는 게 아니라 시행사나 시공사 측이 먼저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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