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 차리며 축문·음복 '종가의 예법' 몸소 배운다
안동은 다른 곳과 달리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 전통을 오롯이 간직해왔다.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안동은 정통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안동에는 조선왕조 건국이념이자 500년을 지탱한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이 학문으로서 면면히 전해 내려온 공간인 서원과 향교 등 교육기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그러한 이념을 철저한 생활의 도리로 실천하고 있는 명문 거족들의 종가가 즐비하게 있다. 이들 속에는 한국의 '반가문화'(班家文化)를 대표하는 의례와 음식문화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반가문화의 중심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다. 봉제사의 핵심은 훌륭한 조상의 삶을 돌아보는 데 있다. 조상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이켜보고 훌륭한 삶을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접빈객은 손님에게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이는 자기 혼자만 잘 사는 삶을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형성시킨다.
안동 곳곳에서는 생활하기조차 불편한 수백 년 세월과 역사를 담은 고가에서 1년에 12차례가 넘는 제사를 모시고 있다. 반가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봉제사 접빈객'이 중요한 책무가 되고 있다. 이들 종가는 가문마다 독특한 예법과 특별한 음식 한두 가지를 간직하고 있어 우리 전통문화의 보물이다. '봉제사 접빈객'에는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사람의 도리, 배려, 베풂과 나눔이 스며 있다. 또, 외국인들에게 자랑할 만한 독특한 문화다.
◆한국적 뿌리가 담긴 제례'혼례 관광상품화 나서
안동 관광두레 공동체 반가문화체험 '오셨니껴?'는 안동만이 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 '전통 의례'라 말한다. 수백 년 이어온 반가문화 가운데 가장 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는 문화가 전통의례 가운데 '제례'다. 또, 지역 반가들을 잇고,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한 의례는 '혼례'다. 지역의 명문가들은 대부분 혼맥(婚脈)과 학맥(學脈)으로 이어지고 하나로 엮어져 공동체가 됐다.
이 같은 지역적 특색을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제대로 알리고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반가문화체험'을 통해 안동관광 활성화에 나선다는 각오다.
경북에는 '불천위'(不遷位'나라에 공이 있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영구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를 모시는 종가'종택이 즐비하다. 전국에 불천위 279위가 모셔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경북에만 절반이 넘는 152위가 있다. 안동에만도 47위 종가가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이는 조선 성리학을 만든 퇴계 선생이 기반을 두고 후학을 양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 종가'종택들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종손과 종부들이 있다. 그들은 현대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을 지켜 실천하고 전하는 책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들의 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봉제사'다. 특히, 불천위를 모시는 종가 종손'종부들은 가문의 영광과 권위의 상징인 불천위 제사에 모든 정성을 쏟고, 자손대대로 제대로 이어지기를 가르친다.
이처럼 '봉제사 접빈객'의 예를 다하려는 지역 특성으로 인해 안동에는 예부터 문중들마다 조리서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안동 광산 김씨 문중의 '수운잡방', 영양 석계종택으로 시집갔던 안동 장씨 계향 선생이 쓴 '음식디미방', 의성 김씨 문중의 '온주법' 등 우리나라 대표 고조리서들이 전해온다.
이들 고조리서에는 제사와 손님맞이에 빠질 수 없는 술(주류) 빚는 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음식디미방에는 총 146가지의 조리법이 나온다. 이 가운데 54개 항목이 술과 관련된 것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온주법에도 56항목 가운데 술과 관련된 항목은 46항목이다.
반가문화체험단 이순자 대표는 "예부터 제사상이나 손님맞이 상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또, 술상과 제사상에는 안주와 그 집안만의 독특한 음식들이 올랐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의례는 예절은 물론 음식과 의복 등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관광상품"이라고 했다.
◆'오셨니껴?' 조상맞이'손님맞이 예를 담은 관광
안동 관광두레공동체 반가문화체험단 '오셨니껴?'에는 관광경영학 박사이면서 대구와 안동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펴온 이순자(61) 대표를 비롯해 한'양식은 물론 다도 및 음식 전문가인 박영숙(58) 씨, 종가음식은 물론 한지공예와 예절강사로 활동하는 전인남(44) 씨, 오랜 외국 생활로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하면서 식품조리'조주사 자격을 갖춘 김명희(50) 관광경영학 박사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의례를 통해 물질 만능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인성'을 되찾고, 전통의례에 녹아있는 나눔과 베풂, 정성, 사람의 도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이벤트성으로 추진됐던 의례 상품을 체계적으로 가꾸고 표준화시켜 안동만이 지닌 관광상품으로 세계 관광시장에 내놓는다는 각오다.
이순자 대표는 "안동엔 오백 년 문화가 살아있다. 제례문화, 종가와 불천위가 그대로다. 이 같은 문화는 느낌이 일반 관광과 다른 감명이 있다. 일반화가 중요하다. 한국적 뿌리가 제례문화에 있다. 음식'인성'의복문화 등 한국문화가 다 포함돼 있다"며 의례문화의 관광상품 가능성을 소개한다.
박영숙 씨는 "의례에는 음식이 따른다. 혼례에는 잔치국수, 제례에는 제삿밥 등이 있다. 가문마다 독특한 음식과 술이 나온다. 이를 가르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며 "관'혼'상례는 평생에 한 차례만 있지만 제례는 해마다 돌아오는 것으로 조상에 대한 예의고 사람 삶의 질서다. 제례에서 예의를 배우고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전인남 씨는 "전통의례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절'이다. 예절에는 사람이 갖춰야 할 도리와 실천해야 할 책무, 바른 자세와 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같은 의례 체험을 통해 사람의 인성을 되찾고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과 나누는 정을 배우고 가는 관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김명희 씨는 "외국 생활 과정에서 안동의 돌담길에 비친 햇살이 그리웠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커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아동에서 문화지킴이 1호로 활동했다"며 "한류라 해서 떠들썩하지만 대부분 지나가고 잊어버리는 의미 없는 문화다. 안동에서 제대로 된 전통 맥 잇기에 참여하고 있다.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수용자들의 태도, 서비스 마인드가 중요하다. 다시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했다.
◆제사상 차리고 혼례 체험, 지속 가능한 관광상품
'오셨니껴?'는 반갑게 손님을 맞는 안동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투리다. 그 속에 사람의 정과 예의를 두루 갖추고 있다. 혹여나 퉁명스럽거나, 불편한 속내를 보여줄 때 쓸 수 있는 '왔니껴!'와 달리 '오셨니껴?'는 환하게 웃으면서 버선발로 달려와 마중하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처럼 반가문화체험단은 전통 의례를 통해 사람의 도리를 알리고, 관광상품화한다. 지역에서 원형을 볼 수 있는 '불천위 제사'를 비롯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택을 활용한 전통혼례 체험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과 의미를 담아낸다.
이순자 대표는 "제례에는 관광객들이 직접 헌관 등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제물과 축문 짓기, 음복하기 등을 통해 나눔과 공경을 배우고, 계절과 시기에 따라 직접 문중이나 종가를 찾아 불천위를 참관하고 종손이나 종부들에게 얘기 듣고 음식을 배우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제사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시간적(한밤중), 공간적(종가)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표준화된 제례 절차와 상을 만들어 체험 관광상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내가 모시는 제사' '시집장가 가는 날' 등 체험객들의 편리성과 맞춤형 관광상품으로 외국인들의 참여도를 높인다는 각오다.
특히 '내가 모시는 제사 체험'은 유아와 초'중'고등학생, 외국인과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제사음식 만들기, 도포 및 관복 입어보기, 제사상 차리기, 지방 쓰기, 종손과 함께하는 제사 이야기, 헛제사밥 먹기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제사 떡을 만들고 전을 부치면서 정성과 섬김을 배우고, 도포 등 한복 차림으로 경건함을, 제사음식을 놓으면서 의미를 알아보고, 제사 후 음복을 하면서 나눔과 배려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집장가 가는 날'은 혼례복 입어보기, 전통혼례와 폐백 체험, 안동국시 만들기와 먹어보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실제 전국의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홍보해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실제 혼례를 대행하고 싶다. 혼례상품을 관광상품으로 연결하고 틈새상품으로 외국인을 상대로 전통혼례를 치르고 싶다. 지역성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전통혼례를 원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대행할 계획이다. 특히, 신혼부부들에게는 퇴계 태실을 빌려서 신혼 초야를 치르도록 하는 이벤트도 가능하다"고 했다. 결혼식을 못 올리는 사람들에게 기부 혼례도 가능하다.
이 밖에 양가 집안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조촐한 전통혼례, 회혼식 등 기념하는 혼례식도 이들이 노리는 틈새시장이다.
'오셨니껴?'는 안동종가음식사업단이 운영하는 체험관과 예미정 한옥을 비롯해 예안향교와 안동예절 다례원, 종가와 종택 등을 체험 장소로 활용하는 한편, 체험객들에게 안동 곳곳에 흩어져 있는 관광지와 연계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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