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국민차

입력 2015-09-24 01:00:09

독일 니더작센주의 볼프스부르크는 인구 12만이 조금 넘는 소도시다. 하지만 주민 연소득은 12만8천달러로 독일에서 가장 부유하다. 1930년대 중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생 계획도시인 볼프스부르크가 유럽 최고의 부자도시가 된 것은 모두 자동차 때문이다.

독일 프로축구팬들은 볼프스부르크를 '골프스부르크'로 비아냥대듯 부른다. '골프'는 폭스바겐이 만드는 소형차 모델로 볼프스부르크가 '국민차'(Volkswagen)의 아성이어서다. 홈구장도 '폭스바겐 아레나'다. 1934년 히틀러가 염원을 담아 설계한 이 노동자의 도시에는 현재 폭스바겐 본사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공장이 있다.

1938년 훗날 '비틀'로 널리 세상에 알려진 KDF바겐('즐거움을 통한 힘'의 차라는 뜻) 생산으로 시작한 폭스바겐은 그동안 아우디와 벤틀리'부가티'람보르기니'포르쉐'스카니아'스코다 등 세계 유수의 회사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면서 12개 브랜드, 연간 생산량 1천만 대가 넘는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이 됐다. 올 상반기 판매실적 기준으로 도요타를 밀어내고 세계 1위다.

승승장구하던 폭스바겐이 최근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 중인 디젤차 모델의 배출가스량을 조작해온 것이 들통난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폭스바겐의 제타와 비틀, 골프 등에 리콜 명령을 내렸고 법무부는 최고경영자까지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로 인해 폭스바겐 주가는 연일 폭락세다. 21일 하루만 17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180억달러(21조원)의 벌금까지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BMW와 다임러, 르노, 푸조 등도 조작에 가담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유럽 메이커들의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GM'포드 등 미국 회사들이 수세에 몰리자 도요타에 이어 폭스바겐을 타깃으로 한 견제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이 팔기 위해 '고연비' '친환경'을 선전하고는 실상 소비자를 속였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도 수입차, 특히 독일제 디젤 승용차의 붐이 거세다. 젊은 층의 수입차 선호도에 맞춰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광고도 넘쳐난다. 그런데 즐거움을 통한 힘이 아니라 소비자를 호구로 여기고 신뢰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가 크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내 자동차사들은 과연 미소 지을 상황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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