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칸 대저택 대청마루 앉아 청송 만석꾼 심부자 밥상 즐긴다
음식이 맛으로만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멋과 전통이란 포장을 입혀야 '명품 음식'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경북의 문화유산에 창조경제를 접목하려는 경상북도는 삼성이 파트너로 참여하는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경북의 종가음식을 '세계의 맛'으로 발돋움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북 음식이 전통 있고 유명한 게 맞느냐?"는 질문도 있다. 지역민들 스스로 "경북의 음식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미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등 종가음식에 관한 다양한 유산을 갖고 있다. 경북은 이런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종가음식'에 창조경제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종가음식 원조, 경북
약 340여 년 전 영양 사대부가의 장계향 선생은 양반가에 전해오는 특별한 음식이나 스스로 개발한 조리법을 소개한 음식디미방을 만들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 한글 조리서. 1600년대 중기 이후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발효식품, 식품보관법 등 146가지를 담아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식경(食經)인 셈이다.
전통 음식 연구가들은 "여성이 쓴 조리책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됐고, 세계음식문화사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장계향 선생은 작가 이문열 선생의 선대 할머니이자 그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음식디미방'의 위력은 글자 그대로 '세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주한 외교사절과 국내외 문화관광 인사들에게 소개된 '종가의 맛 음식디미방 시식회'는 음식디미방의 위력을 한눈에 보여줬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변추석 당시 한국관광공사 사장, 세르지오 메르쿠리 주한 이탈리아 대사 등 국내외 인사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 요리에 반했다.
이날 조귀분 석계 종부가 음식디미방에 수록된 대구껍질누르미, 수증계, 가제육 등을 직접 소개했다. 특히 오이채와 석이버섯, 꿩고기 등으로 소담하게 담아낸 전통방식의 잡채를 비롯해 대구껍질누르미와 화전 등 조선 대표 음식의 향연에 외국인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외국인 참석자들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의 맛"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340년 전의 요리서에 수록된 음식을 재현한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사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쇼핑 다음으로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이 국가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좌우하는 문화 매개체인 것이다.
더욱이 한식은 이미 중요한 관광콘텐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창조경제가 한식문화 세계화와 발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종가음식, 부가가치를 찾자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종가음식의 고부가가치화에 나서고 있다.
청송의 경우. 최근 조선시대 만석꾼 밥상을 재현해냈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 집안의 음식을 요즘 입맛에 맞게 각색해낸 것이다.
청송군과 한국외식업 청송군지부는 최근 송소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0호)에서 '심부자 밥상' 품평회를 갖고 만석꾼 밥상을 공개했다. 이번 품평회에 소개된 음식은 청송 심씨 종가의 종부를 중심으로 집안에 내려오는 다양한 음식을 연구하고 발굴'재현한 것.
심부자 밥상은 9첩 반상으로 장류와 찌개, 반찬 등 25가지 이상의 음식이 오른다. 종가 밥상은 7첩 반상으로 22가지, 양반 밥상은 5첩 반상에 17가지 이상 음식이 차려진다.
심부자 밥상과 종가밥상의 체험 가격은 1인당 6만원과 4만원이다. 특히 이 두 밥상 체험은 99칸 대저택인 송소고택 대청마루에서 즐길 수 있다. 이 상차림은 송소고택이 바라보이는 '심부자 밥상식당'에서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갖춘 음식, 격조 높은 종가음식'이란 뜻의 안동종가음식 '예미정'(禮味亭) 맛 체험장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안동 정상동 삼정마을에 자리한 예미정 맛 체험장은 지역 종가음식 상차림 문화를 산업화한 것.
이 체험장은 안동종가음식산업화사업단이 지난 3년 동안 안동 곳곳을 돌며 안동 종가음식의 특성과 조리법 등을 연구'발굴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종가음식사업단은 종가음식의 모든 간을 책임지는 전통 장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고, 장독대를 활용한 장 담그기와 간장 뜨기 등을 종가음식 상차림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 종가들만이 개발하고 창작한 음식 등도 조사됐는데 예미정 맛 체험장을 통해 공개 중이거나 향후 선보일 예정이다.
예미정 맛 체험장은 300여㎡ 면적에 조리실과 체험장, 사무실, 장독대, 발효실 등을 갖추고 있다. 맛 체험장에서는 방문객의 음식 만들기 체험뿐만 아니라 지역 7'9첩 반상과 안동건진국수, 안동비빔밥 등도 선보인다.
특히 안동종가음식사업단 예미정이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와 함께 최근 내놓은 '안동비빔밥'은 '전통의 현대화'를 이룬 대표작이다. 예미정의 안동비빔밥은 날계란 노른자 또는 육회를 고명으로 올리는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등과 달리 장똑똑이(소고기 다진 것을 고추장으로 볶은 것)라는 육장을 사용하며 깨소금만 뿌려 밥을 비비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안동비빔밥의 비빔 나물은 고사리와 도라지, 가지나물, 토란대, 콩나물, 배추숙주나물(또는 시금치) 등을 사용하며 나물을 삶은 다음 참기름으로 볶지 않고 무쳐 내 기름기가 적은 것이 다른 지역 비빔밥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예미정은 안동비빔밥 개발과 개량작업을 함께 진행했으며 '정월 대보름 9채 비빔밥' 등 안동비빔밥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메뉴까지 선보인다.
◆밥상 위의 창조경제
경북도와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통 문화자원의 창조산업화를 서두르고 있다. 스마일 사과 등의 농업 부문에 이어 종가음식 활성화 사업에도 나섰다.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의 파트너인 삼성 관계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잡방은 조선 중기 안동 예안에 살았던 김유(金綏'1481~1552)가 지은 전통 조리서. 음식디미방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각종 술의 제조법과 각종 김치 담그는 법, 다과와 탕류의 조리법뿐만 아니라 채소의 재배법도 실려 있다. 중국의 조리서 등을 인용한 것도 있지만 당시 안동 인근에서 주로 만들던 음식 조리법을 적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도와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호텔신라가 수운잡방 메뉴를 개발하고 제일기획이 마케팅'컨설팅 및 홍보를, 웰스토리가 위생 점검'교육 및 식재료 컨설팅을 하는 추진 계획이 잡혀 있다. 이런 계획이 착착 진행되면 연내에 수운잡방 종가식당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경북도는 보고 있다.
경북도 김학홍 창조경제산업실장은 "수운잡방'음식디미방 등을 이용, 새로운 창조경제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며 "창조경제센터와 함께 경북 종가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추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도약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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