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추억의 길

입력 2015-09-21 01:00:09

공사로 레미콘 차가 길을 막고 있다. 공장과 공장 사이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도로 따라 늘어선 논밭들이 하나둘 공장으로 변하더니 급기야 하나 남은 논마저 공장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무논의 벼는 푸른 기운을, 누렇게 익은 벼는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청량제 같았는데 논들이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없어지고 있다. 삭막하고 답답한 회색빛 공장 건물이 생기면서부터 걸핏하면 물건을 싣고 내리는 화물차들로 통행에 방해를 받는다. 동구 밖에도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임시로 만든 진입로 앞을 지날 때마다 파도타기 하듯 곡예운전을 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옥포는 지금 마을 안팎으로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예전엔 동구 밖까지 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마을회관 앞에서 벚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걸으면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난다.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목련, 국화와 코스모스, 깨꽃과 도라지꽃, 그리고 대궁 끝에서 학처럼 고고하게 피는 부추꽃까지. 그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주변의 풍경을 담으며 가다 보면 교회 앞에 다다른다. 한때, 마을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이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명성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고 큰 건물에 속하는 교회는 동구 밖까지의 중간 지점이랄 수 있다. 거기서부터 가로수는 벚나무가 아닌 이팝나무로 바뀐다. 대개의 마을이 그렇듯 우리 마을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 마을인 교항리와 구분된다. 교항리는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된 300여 년 된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으로, 꽃이 피는 5월이면 사진작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래서 일찌감치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심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나의 모교인 아담한 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를 지나 경사진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동구 밖에 이른다. 동구 밖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한없이 평화롭다. 마을 뒤로 펼쳐진 마개들판은 비닐하우스의 은빛, 무논의 초록,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가을의 황금빛, 그 삼색으로 사계절을 맞고 보낸다. 그 뒤로 휘돌아 흐르면서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낙동강이 있다. 동구 밖에서 잘 보이던 마을의 전경이 이젠 금계산 중턱에 올라가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도로 주변에 제방을 쌓듯 두둑을 만들고 그것도 부족해 그 위에다 가림막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추석이 가까워 오고 있다.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어머니의 품을 찾아 고향으로 올 텐데 달라진 마을의 모습에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긴가민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심까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 고향을 찾아오면 예전과 다름 없이 푸근한 정과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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