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9월 13일 긴급전문이 몽골 정부에 타전됐다. 그날 새벽 중국 공군기가 몽골 고원에 추락, 탑승자 9명 전원이 사망했다는 보고였다. 영문을 모르는 몽골 정부는 항의했지만, 중국은 사과만 할 뿐 탑승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항일전과 국공내전 때 용맹한 혁명가였고, 건국 후 국무원 부총리와 국방장관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린뱌오는 이렇게 생을 마쳤다.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아주 잘 나갔기 때문이었다. 1969년 전국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 동지의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면서, 이미 76세로 늙어버린 마오쩌둥의 유고 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랐다. 이때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과의 틈새가 벌어지자 저우언라이가 기회를 파고들었다. 제거될 낌새를 챈 린뱌오는 마침내 쿠데타를 생각했고, 시도가 사전에 발각되자 가족과 함께 소련으로 달아나려다 분명치 않은 이유로 추락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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