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주년 특별기획-권영재의 내고향 대구] 36)빵끼

입력 2015-09-17 01:00:05

가난했던 옛날에는 빵끼가 서민에게 귀중한 반찬거리였다. 빵끼 알은 진한 남색을 띤 것과 진홍색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차이는 모른다. 수놈 대게 맛에 길든 사람들은 빵끼가 먹을 것이 없다고 괄시한다. 다리도 가늘고 몸체도 작아 어디 한 군데 손댈 만한 곳이 없다. 그나마 빵끼가 인기가 있는 것은 알이 있어서다. 알을 꼭꼭 깨물면 톡톡 터지는 재미에다 알 자체도 정말 맛있다. 빵끼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거나 국수 삶을 때 같이 넣어 먹으면 국물이 더 맛있어진다.

방아깨비는 메뚜기 목에서 가장 큰 곤충이다. 표준어에는 방아깨비라는 말밖에 없지만, 대구말로는 암수가 각각 다른 이름을 갖는다. 암놈은 홍글레, 수놈을 떼떼라고 부른다. 홍글레는 몸 전제가 짙푸른 아름다운 색이고 크고 당당하게 생겼다. 떼떼는 크기가 조그마한 게 날개도 녹색 바탕에 갈색이 섞여 꾀죄죄하게 생겼다. 게다가 날아갈 때는 그냥 소리 없이 가면 될 것을 '떼떼'하면서 날아가므로 이름조차도 신통찮게 지어졌다.

대게는 방아깨비와 반대다. 대게는 수컷이 크고 멋있게 생겼고 암컷은 작고 볼품없다. 표준말에는 대게 하나밖에 없지만, 대구경북서는 수컷은 대게라고 부르고 암컷은 크기가 작아 빵 같다고 '빵끼'라고 부른다. 표준말로 부른다면 빵게 정도가 되겠다. 생물분류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이 둘이 서로 다른 종인 줄 안다.

가난했던 옛날에는 빵끼가 서민에게 귀중한 반찬거리였다. 빵끼 알은 진한 남색을 띤 것과 진홍색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차이는 모른다. 수놈 대게 맛에 길든 사람들은 빵끼가 먹을 것이 없다고 괄시한다. 다리도 가늘고 몸체도 작아 어디 한 군데 손댈 만한 곳이 없다. 그나마 빵끼가 인기가 있는 것은 알이 있어서다. 알을 꼭꼭 깨물면 톡톡 터지는 재미에다 알 자체도 정말 맛있다. 빵끼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거나 국수 삶을 때 같이 넣어 먹으면 국물이 더 맛있어진다.

대한민국은 영토가 좁은 나라인 데 비해 그 산물은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처음 서울 갔을 때 대구와 다른 먹거리를 보고 한참 동안 신기했다. 대구서 못 보던 것들이 많았다. 1960년대 대구에는 찌개가 없었다. 대구서는 된장에 국물을 조금만 넣어 지져 먹었기 때문에 국물이 흥건한 찌개는 없었다. 된장 푼 물을 뚝배기에 담아 밥할 때 쌀 위에 얹어 끓이면 뜨거운 쌀 물이 넘쳐 된장 지짐 그릇에 흘러들어 간다. 그렇게 만든 된장 지짐은 정말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대구 된장 지짐은 물이 별로 없고 넣는 것도 풋고추만 넣는다. 아주 단순하고 그래서 담백하다. 서울서는 대구의 지짐과 국의 중간 형태인 찌개가 있었다. 오징어찌개, 된장찌개, 조기찌개, 동태찌개 등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순두부찌개가 가장 맛이 좋았다.

서해에서 잡히는 게는 이상하게도 생겼다. 게는 주로 다리를 먹는 생선인데 서울의 게는 다리가 넓적하여 먹을 게 없었다. 게 주제에 껍데기 무늬는 화려한 꽃 모양을 하고 다리는 짧고 넓적하니 '이것도 게인가' 싶었다. 빵끼가 그리웠다. 빵끼는 수놈에 비하면 부실하다. 하지만 서울의 꽃게에 비하면 우량아에 속한다. 꽃게는 알이 없었다. 크기도 작고 다리도 알도 먹을 게 없으니 이게 무슨 게란 말인가! 나중에 보니 꽃게는 암놈이나 수놈은 부부유별 하지 않았다. 크기도 같고 모양도 같았다. 삼강오륜을 어기는 가문이니 양반은 아닌 모양이었다. 꽃게 알은 암컷 배속에 들어 있는데 왜 임신을 숨기는지도 의아하다. 꽃게는 알도 빵끼와 달리 찐득한 치즈처럼 덩어리져 모여 있었다. 그 바람에 알을 씹는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정말 '빵끼 만세!'였다.

동해에는 양반 어류가 있다. '글 하는 생선'이라고 문어(文魚)라 부른다. 이름 덕에 이놈은 양반집 제사 때는 반드시 상에 오른다. 서해는 그런 지체 높은 생선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먹어 질리던 오징어도 서울에는 없고 주전부리용 멍게도 없었다. 명태는 아마도 보관이 어렵지 않은 탓에 상경까지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서해는 동해보다 훨씬 다양한 생선이 와글대는 바다였다. 조기, 조개, 가오리, 홍어, 새우, 실치, 낙지 등등 정말로 대구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생선이 시장에 놓여 있었다.

얼마 전 서울대공원에서 재주부리던 돌고래 한 마리를 바다에 놓아주었다. 3년 동안이나 동물원에 살고 있던 놈인데 불법으로 포획된 고래라서 다시 바다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비가 7억5천만원이나 들었다고 한다. 사람도 아닌 일개 미물인 돌고래에 이런 돈을 쏟아붓다니 서울은 돈도 흔하지, 마치 연극 '돈키호테'를 보는 기분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다 보면 망망대해를 헤매던 어부가 돌고래를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은 동물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우리 할머니가 울면서 소를 팔았다는 이야기에 나도 울었다. 요즘이야 아예 고기 먹을 소를 따로 키우지만, 옛날에는 실컷 부려 먹고 늙으면 잡아먹었다. 팔려가는 소의 눈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하긴 그런 고기를 먹는 주인인들 뭐가 그리 좋았겠는가! 배가 고파 그런 거지. 이런 비극이 일상이었던 시절 돌고래 잡아먹는 것쯤이야 아무 거리낄 것 없는 행위였다. 하물며 빵끼 쯤이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자연보호라는 말이 생겼다. 이제는 빵끼도 먹을 수가 없고 개도 먹지 못하게 됐다. 돌고래를 먹었다가는 개망신당하게 생겼다. 심지어는 어떤 나무와 풀도 천연기념물이라고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한다. 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 나쁜 사람들은 많이 헷갈린다. 같은 돌고래라도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합법적으로 잡히면 와서 고생해도 좋다는 말인가! 개도 그렇다. 인물이 못생긴 놈들은 보신탕이 되고 모양 예쁜 놈들은 방에서 살고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간다. 앞으로는 고등어나 꽁치도 불법으로 잡혀 오면 애지중지 살려서 바다로 내보내 주게 되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 같은 게라도 빵끼는 알 밴 놈이라고 금어(禁漁)를 하고 왜 꽃게는 암수 가리지 않고 다 잡아먹는 것일까. 머지않아 한국의 동물원이나 식물원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동물도 먹지 못하고 식물도 먹지 않는 그런 극락세계가 오면 인간들은 무얼 먹고살까? 아마도 엽록소로 광합성을 하여 자신들의 양식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스님들은 참 앞서 가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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