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현실인지, 황홀경을 걷다
일상의 판박이 생활을 떠나서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살찌게 한다. 초가을 강원도 인제 점봉산 줄기에서 내려온 곰배령은 약 16만5천300㎡(5만 평)의 산상 고원으로 풀과 야생화 천국이다. 이맘때 찾아가는 오지 중의 오지 곰배령은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땅과 하늘, 물소리, 새소리, 꽃과 바람의 어울마당이 되는 환상의 트레킹 코스다.
들머리인 생태관리센터 외벽에 오늘 걸어야 할 진동계곡과 곰배령 야생화 사진이 붙어 있다. 입산허가증을 받은 후 트레킹을 시작한다. 계곡의 맑은 물이 유정하게 흐르고, 구슬을 굴리는 듯한 물소리가 찰랑찰랑 귀를 적신다. 저렇게 물은 흘러가도 물소리는 바람을 흔들고, 트레커들의 오감도 흔들어 깨운다. 어디서 왔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잘린 나무 위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트레커들이 그 앞을 지나가도 본체만체이다. 인간과 다람쥐가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고 있다. 생명, 그 뿌리의 뿌리까지 가면 인간도 다람쥐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만들어졌다. 저 태고의 이끼로 덮여 있는 쓰러진 나무도 이름 모를 풀과 꽃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경사가 적고 흙의 감촉이 좋고, 꽁무니 바람까지 불어와 귓불을 간질이니 트레킹은 숫제 즐거움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곰배령 가는 길목, 화전민이 살았던 강선마을에 닿는다. 작은 우편함이 서 있다. 저기 천상에 보내는 우편물이 여기서 잠자고 있는지 모른다. 잣나무 게시판에 KBS 인간극장 '여기에 사는 즐거움'. MBC 다큐스페셜 '곰배령 사람들'이 적혀 있다.
강선 산림통제소에서 입산증을 확인받고 트레킹을 이어간다. 징검다리를 건너자 계곡의 맑디 맑은 물이 마음까지 씻어 준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조금 경사진 길을 걸어 드디어 고갯마루 곰배령에 오른다. 곰배령(1,164m)은 인제군 귀둔리 곰배골 마을에서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지난날에는 인제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나들며 양양 장을 봐 먹었다.
곰배령은 원래 천국의 것이었다. 갖가지 꽃과 동물이 너무나 아름다운 천국을 하늘이 땅에게 잠시 빌려 주었다. 그 후 하늘이 다시 찾아가려고 하자, 곰이 내놓지 않으려고 하늘을 향해 벌렁 누워 버티자, 하늘이 곰에게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곰배령은 곰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곰배령이다. 곰배령에서 바라보는 인제 홍천 쪽도 장관이지만, 북으로 설악산 대청봉과 양양 방향 산세의 파노라마도 매우 황홀해 지상의 세계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니나베의 돌조각에 새겨진 앗시리아 페니키아 배들이 그리스 신화 속의 하늘을 항해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곰배령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남북방한계선이 교차하며, 남북방계 식물이 모두 자라는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점봉산과 곰배령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약 20%인 854종의 식물과 84종의 조류, 포유류가 서식하는 국내 최고의 보존가치를 지닌 산림이다. 군데군데 피어 있는 야생화에 매료된다. 저 속절없이 처연한 야생화는 차라리 비애롭다.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모두 소박한 야생화의 미소에 녹아버린다. 하늘의 메시지인 비바람과 땅의 젖 물림으로 피어난 야생화는 우리의 내면을 밝혀주는 낮별이다. 마타리, 어수리, 궁궁이, 눈빛승마, 오이방풀, 금강초롱 야생화 이름을 불러본다. 풀 속에 숨어 피는 꽃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야생화는 아름다운 가을 하늘에서 다시 핀다. 자리를 털고 점봉산 반대편 호랑이 코빼기로 간다. 올해 7월 처음으로 연 제2코스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별명을 가진 주목 군락을 지나고, 곰배령 꽃 대궐 문을 나선지 1시간 40분, 날머리인 생태관리센터에서 트레킹을 마친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돌아갈 채비를 한다.
※Tip
* 트레킹 길 :
제1코스: 주차장(설피마을)-생태관리센터-강선마을-제1, 2쉼터-곰배령(같은 길 돌아 나옴)
제2코스: 1코스 곰배령까지는 같고, 곰배령-호랑이 코빼기-주목군락-왼쪽으로 하산
(산행거리 왕복 약 10㎞, 제1코스: 4시간 20분, 제2코스 4시간 30분, 휴식시간 포함)
*내비게이션 주소: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218번지(지역 버스를 이용한 곰배령 트레킹은 어렵다. 승용차, 관광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문의처: 곰배령은 탐방인원 1일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인제국유림관리소: 033)463-8166
*인터넷예약: 산림청 www.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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