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소 '그 사람은 발이 넓다'와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실제로 발의 면적을 재어 보지 않았으면서도 그런 말을 쓰는 이유는 '발이 넓다'라는 말이 둘 이상의 낱말이 합쳐져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뜻으로 굳어져서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 모양이 실제로 좁다랗게 생긴 사람이라도 인맥이 넓어서 아는 사람이 많을 경우에 '발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관용적 표현은 처음부터 원래의 말과 다른 새로운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처음 관용적 표현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원래의 말에서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원래의 말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그런 관용적 표현이라면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말이 사라져 버리면 관용적 표현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원래 말의 의미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지만, 관용적 표현은 그대로 남아 있는 특이한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시치미'와 '바가지'에 관련된 말이다.
흔히 '시치미를 떼다'라고 하면 자기가 해 놓고도 안 한 척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시치미'는 옛날 매로 사냥하는 것이 성행하던 시절, 매의 이름, 주인 이름 등을 기록하여 달았던 표시였다. 그러니까 우연히 매를 잡았다 하더라도 시치미를 보고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시치미'를 얼른 떼어버리고 마치 자기 매인 양 꾸미기도 했었는데, 이런 상황을 보고 '시치미를 떼다'는 표현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이 만들어진 내력을 보면 관용적 표현이 의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가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하면 바가지를 긁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귀신을 쫓았다. 그런 내력을 알고 있으면 마누라의 잔소리와 같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바가지를 긁는 소리를 쉽게 연결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치미'나 '바가지'를 긁는 풍습을 볼 수 없다. 원래의 말이 가진 내력이 사라졌고, 사람들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치미를 떼다'나 '바가지를 긁다'와 같은 표현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관용적 표현이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시치미라는 말이 이제는 '모른 척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바가지는 '시끄럽게 하는 잔소리'라는 의미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치미를 떼다' '바가지를 긁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어디서 시치미야!" "마누라는 늘 바가지야"와 같은 식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학생 체벌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한 운명을 가진 또 다른 관용적 표현인 '교편을 잡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게 된다. '교편'(敎鞭)에서 '편'(鞭)은 원래 형벌을 가할 때 쓰는 채찍이었는데, 교육의 현장에 들어오면서 학생을 체벌할 때 쓰는 회초리와 같은 도구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교사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교편을 잡다'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교육의 기본은 매를 통해 훈육하는 것이라는 옛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각성하게 만드는 방법은 회초리가 최고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교육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고, 아이들도 많이 바뀌면서 아이들은 회초리에 맞으면 각성을 하기보다 정신적 충격을 먼저 받게 된다.
교편은 이제 '시치미'처럼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지만, 교편이라는 말은 '교직'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교직 생활에서 무엇을 잡아야 할지는 고민해야 될 문제이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