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물 만났다, 유아인! 전성기 맞아 종횡무진

입력 2015-09-11 02:00:04

티켓 파워도'베테랑'

분야를 10년씩 파고들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10년간 1만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원했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소위 '1만 시간의 법칙'과 맞물리는 뜻을 가진 조언이다. 그럴싸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황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달라져야 하겠으나, 그래도 '특정분야에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적용 가능한 충고이긴 하다. 선천적인 재능 대신 노력으로 재능있는 자들을 따라잡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 단, 재능을 타고난 이가 10년의 세월 동안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정상을 향해 갈 수 있다는 뜻에서 꺼내본 이야기다. 요즘 절정의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유아인(29)에게도 이 법칙은 잘 맞아떨어진다. 올해로 데뷔 11년 차, 연기 좀 하는 기대주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지 5년여 만에 연기 변신은 물론이고 최고의 히트작까지 내놓으며 상종가를 치고 있다.

◆첫 악역에 첫 번째 '1000만 영화', 그리고 또 '1000만' 가능성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 승승장구하고 있던 유아인의 행보가 새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는 최근 영화계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성과 때문이다. 현재 첫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 영화 '베테랑'이 1천2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메가 히트작이 됐고, 극 중 망나니 재벌가 자제 역을 소화한 유아인의 연기 역시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또 '베테랑'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영화라는 사실 역시 눈길을 끈다. 화제성 높은 드라마에 모습을 보이던 것과 달리 영화를 고를 때는 '깡철이' '완득이' 등 저예산에 가까운 작품을 주로 택했다. 스케일보다 알찬 내용을 내세우는 영화라 캐릭터가 부각돼 배우가 돋보일 순 있었지만 극장가를 장악할 만큼 좋은 성적을 얻지는 못했다. '베테랑'은 유아인을 티켓 파워까지 보장되는 '톱스타'로 성장하게 만드는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어 16일 개봉되는 또 다른 출연작 '사도'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영화 자체에 대한 호평, 또 사도세자 역으로 대선배 송강호와 연기호흡을 맞춘 유아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참여한 스케일 큰 영화 두 편이 한 달 간격으로 극장에 걸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평단의 호의적인 평가뿐 아니라 추석 시즌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을 만한 작품으로 꼽히면서 유아인이 '베테랑' 이후 '사도'까지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동안 마스크에 선한 이미지, 반면 자기주장 강하고 능동적인 성격

유아인은 독특한 행보뿐 아니라 외모부터 또래 스타들(1980년대 중후반 출생)과 뚜렷한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장근석이나 송중기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꽃미남은 아니고, 181㎝의 훤칠한 키를 가졌지만 187㎝에 달하는 김우빈이나 이종석처럼 압도적인 다리 길이를 자랑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꾸미지 않았을 때는 흔히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잘생긴 동네 청년' 정도의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자칫, 외모로 따졌을 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오히려 유아인은 '평범하게 잘생긴' 외모를 가졌기에 또래 남자 스타들보다 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 영화 '완득이'의 반항기 넘치는 혼혈아나 '깡철이'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이미지는 유아인이었기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여백이 느껴지는 선한 얼굴에 다양한 감정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담아내며 몰입도를 높이니 보는 이들도 유아인의 연기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캐릭터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 '밀회'에서 무려 19살이나 많은 김희애와 멜로 연기를 하면서도 시청자들을 쉽게 설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유아인의 소년처럼 선한 인상과 편안하고 사실적인 연기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베테랑'에서 고급 슈트를 걸치고 깨끗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단정한 모습으로 망나니짓을 일삼는 유아인 역시 외적으로 어색하지 않았다. 간혹 남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나 화보촬영을 하며 아이돌스타처럼 스타일리시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소화할 때도 유아인은 자연스러웠다. 채워넣을 여백이 많다는 건 확실히 배우에겐 특장점이다.

사실 유아인의 연기생활이 내내 평탄했던 건 아니다. 데뷔는 2004년. 대구 경북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오디션을 통과해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2 TV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고아라의 남자친구 역으로 출연했다. 10대의 순수함이 엿보이면서도 반듯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는 외모, 그리고 신인임에도 꽤나 안정적인 연기로 단번에 주목받았다. 이듬해에는 가능성을 인정받아 당시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김종학프로덕션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이때만 해도 당장 스타가 될 수 있을 듯했던 분위기. 그러나 쉽진 않았다. 이후로 '4월의 키스' 등 드라마와 영화 '좋지 아니한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에 출연했지만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 '하늘과 바다'에 출연할 때는 제작자로 나선 장나라의 부친 주호성을 정면공격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렸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늘과 바다' 제작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중심에 제작자 주호성의 월권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주호성이 불같이 화를 내며 글의 내용을 부정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유아인이 쓴 글을 단순히 어린 배우의 치기 어린 폭로라고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유아인의 글은 논리정연했고 대담했다. 대외적인 이미지 만들기에 급급한 또래들과 달리 유아인은 이후에도 SNS 등을 통해 대중문화 및 사회적 이슈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수위 높은 내용이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철없는 청년의 치기 어린 발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힘 있는 문장이었다.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기부까지 하며 '소셜테이너'의 이미지를 쌓기도 했다.

사실 이때가 배우로서 유아인에게는 위험한 시기였다. 굳어진 특정 이미지 탓에 다양한 역할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어진 5년여 정체기는 다행히도 2010년 SBS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만나면서 마무리됐다. 이 드라마에서 유아인은 과묵하고 남성적인 캐릭터 걸오를 연기하며 호응을 얻어 다시 청춘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또 5년. 11년 차가 된 지금 유아인은 자신감 넘치고 소신 있는 젊은 연기자로 불리며 폭넓은 연령대에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가 유아인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초여름이다. 당시 유아인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개봉에 앞서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고 있었다. 유아인은 미끈하게 잘생긴 외모에 나이답지 않은 대담함과 저돌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불만 때문에 과감히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패스한 후 대학에 입학했다며 또렷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21살에 불과했던 이 '어린 청년'과의 대화는 이미 10여 년을 더 살았던 필자의 마음까지 혹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흔해 빠진 표현이었지만 펄떡거리는 그 모습에 비유해 '갓 잡은 생선'이란 수식어를 유아인의 인터뷰 앞에 붙였다. 8년이 지났지만 유아인은 여전히 이 말이 잘 어울린다. 지금도 유아인은 '갓 잡은 생선'처럼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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