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여당 대표 쇠파이프 발언
노동자를 객체로 보는 한국 특성 때문
獨, 노조를 경영진 파트너로 인식
주체로 바라볼 때 경쟁력 높아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얼마 전 "대기업 강성노조가 휘두르는 쇠파이프가 없었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극적인 발언을 하고도 그분의 목이 안녕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의식 수준이 2만달러대의 소득수준에도 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발언은 물론 과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들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야 정치인들이 늘 하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문제는 그의 거짓말이 과도하게 선정적이며 선동적이라는 데에 있다.
노동 3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에 노조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것은 아마도 정권과 언론에서 장기간에 걸쳐 행해온 선동 때문이리라. 그 선동이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주는 예가 있다. 언젠가 C일보에서 노조 때문에 독일경제가 망해가고 있다는 선동적 기사를 실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일 유학 중 언론에서 노조를 공격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시민들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해준다. 버스 파업으로 발이 묶여도 불평 한마디 안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를 보고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곧바로 반박기사를 실었다. 거기에 따르면 독일정부는 독일의 강력한 노조를 독일경제의 걸림돌이 아니라, 외려 독일경제의 경쟁력 요인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독일기업들은 강력한 노조 덕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얘기다.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C일보는 그 반박기사 옆에 외부필자를 동원해 재반박 기사를 실었다. 당사자가 우리 며느리 덕분에 살림이 늘었다는데, 옆집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는 격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노조를 바라보는 이 두 개의 시각이 바로 한국경제와 독일경제의 차이다. 예를 들어, 50대 노동자를 기업에서 해고한다고 하자. 이를 한국기업에서는 그것을 '노동시장의 유연화'라 부르나, 독일기업에서는 그것을 '노하우의 상실'이라 부른다. 한국기업은 노동자를 '객체'로 바라본다. 경제의 주체는 CEO이고, 노동자는 그저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로 간주되는 것이다. 반면 독일기업에서는 노동자를 '주체'로 바라본다. 즉 노동자를 경영진과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노동자가 '객체'일 때와 '주체'일 때, 어느 쪽이 노동생산성이 더 높을까? 당연히 노동자가 '주체'일 때, 노동의 의욕도 높고,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생산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물론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자본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노동자들은 오직 자신을 집단으로 조직할 때에만, 비로소 집단적 주체로서 경영진과 대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독일에서 노조를 경쟁력 요인으로 꼽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조라고 하면 일단 두드려 패려고 할까? 물론 노조가 불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불필요하다고 볼까? 물론 노동자를 생산의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생산의 주체로 보지 않을까? 그것은 1970, 80년대의 관성 때문이다. 실제로 그 시절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기계에 노동력을 쏟아부으면 그 투입량만큼 곧바로 생산력이 증대했다. 그 관성 때문에 아직도 노동자를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즉 생산의 투입요소로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발전하던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에 있다. 김무성 대표가 말하려고 한 것은 결국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리라. 그의 진단은 옳다. 하지만 그의 처방은 완전히 잘못됐다. 선진국이 되는 비결은 노동자를 생산의 '주체'로 세우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노동자의 창의성을 토대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이렇게 수정돼야 한다. "노조에 휘둘러대는 정권과 언론의 쇠파이프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래전에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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