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살인죄를 고백하는 느낌이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뒤 했다는 말이다. 다윈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했을까? 틀림없이 앨프리드 월리스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월리스는 다윈과 거의 동시에 '자연선택' 이론에 도달했지만, 다윈보다 한발 앞서 그 이론을 논문으로 엮어낸 과학자다. 그렇다면 왜 다윈은 월리스를 죽였다고 했을까?
그 답은 1858년 6월 다윈이 받은 월리스의 짤막한 에세이에 있다. 제목이 '원래 유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려는 변종들의 경향에 대하여'라는 것인데 다윈은 경악했다. 20년간의 연구 끝에 도달한 '자연선택' 등 진화론의 핵심 주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당시 다윈은 진화론의 완성 단계에 있었지만, 학계의 인정을 받을지 자신하지 못해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다윈은 그해 7월 초 '종의 기원' 집필에 들어가 이듬해 11월에 출간했다. 초판 1천250부가 당일 매진될 정도로 반향은 엄청났다.
이렇게 해서 진화론의 역사에서 다윈은 불멸(不滅)이 된 반면 월리스는 잊힌 인물이 됐다. 이를 안타까워한 일부 연구자들은 다윈이 월리스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부인하는 측에서는 자연선택 개념을 누가 먼저 구축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다윈과 월리스가 각각 떠올렸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는 의견을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선택 개념을 창안한 인물이 다윈과 월리스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월리스의 에세이보다 27년이나 앞선 1831년 12월 출간된 스코틀랜드 농장주 패트릭 매슈(Patrick Matthew)의 책에도 '종의 기원'과 같은 글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자주 등장했던 '동시 발견'의 신비(?)를 떠올리게 한다.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소설가 박민규 씨가 표절을 인정했다. 그러나 고해(告解)에 이르는 과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혼자 동굴에 앉아서 완전한 창조를 한다고 해도 우연한 일치, 마치 교통사고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다윈과 월리스, 매슈의 '동시 발견'을 생각나게 하는 변명이었다. 그가 말하는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 속의 구체적인 문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로 위대한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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