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하의 유럽 여행 길라잡이] 프랑스 노르망디 에뜨르따 마을

입력 2015-09-09 01:00:05

아버지 코끼리 바위 옆, 바다 중간에 서 있는 촛대바위는
아버지 코끼리 바위 옆, 바다 중간에 서 있는 촛대바위는 '괴도 아르센 루팡'의 '기암성'에 등장하는 바위이다.
아기 코끼리 쪽 바위를 바라다보는 에뜨르따 해변.
아기 코끼리 쪽 바위를 바라다보는 에뜨르따 해변.
아버지 코끼리 바위에서 보이는 어머니 코끼리.
아버지 코끼리 바위에서 보이는 어머니 코끼리.

이제 영국을 벗어나 유럽으로 발길을 돌려 보자. 첫 목적지를 프랑스 그것도 영국과 가장 가까운 노르망디 해변의 보석 마을 에뜨르따(Eterat)로 정했다. 프랑스의 북부해변은 영불해협을 중간에 두고 영국 잉글랜드 남부해변을 마주하고 있다. 두 나라가 가장 가까운 곳인 영국 도버와 프랑스 깔레 항구 사이는 불과 80㎞ 거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도버에서 깔레 사이 해저터널을 달리는 유로스타에 차를 실으면, 페리로 2시간 반이나 걸리던 거리를 불과 35분 만에 건넌다. 유로터널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유감스럽게도 해저 터널이라고 하지만 수중이 아니라 땅속 터널을 달리니 바닷속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구경거리는 없다. 터널 벽 유리 밖에 수족관처럼 고기가 노는 깊은 바닷속을 보길 기대한 순진한 상상을 채우지 못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분들도 가끔 있다. 어찌 되었건 이 터널 때문에 런던 근교 집에서 에뜨르따를 당일 만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그래서인지 영국과 프랑스는 토닥토닥 애증과 은원의 관계를 참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죽이고 살리고 하던 사이를 '토닥토닥 애증과 은원의 관계'라고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양국이 서로 주고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 둘은 우리처럼 한쪽이 주변 이웃으로부터 늘 피해만 받아 온 사이가 아니다. 형편이 허락하면 쳐들어가서 노략질을 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앉아서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공정하게 얘기하면 잉글랜드보다는 훨씬 대국일 것 같은 프랑스가 사실은 잉글랜드 땅을 제대로 쳐들어 와 본 적이 없다. 엄밀하게 따지면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영국에 당하기만 해왔다.

에뜨르따는 깔레에서도 270여㎞라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가 노르망디 벌판의 경치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루어졌던 곳도 멀지 않다. 시간이 나면 연합군과 독일군이 같이 영면하는 묘지에 들러 젊은 영혼들의 안식을 빌어주다 보니 내가 삶의 위안을 받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노르망디 해변의 어촌 마을들을 노르망디의 보석이라고 나는 부르지만 그중에서도 에뜨르따는 왕관 제일 앞의 보석이다. 차를 주차하고 방파제 위에 올라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의 흥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반달형의 해변 왼편 하얀 절벽도 장관이지만 그 앞에 달린 코끼리 코 같은 아치형의 바위 구멍과 그 옆에 선 촛대 바위는 순간 숨을 멈추게 만든다. 바로 이 광경을 오스카-클로드 모네, 귀스타프 쿠루베, 바실리 폴레노프의 그림에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특히 모네의 '에뜨르따의 일몰'과 '에뜨르따의 거친 바다'에서 보았던 바로 그대로의 모습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었다. 여기 어디선가 하얀 긴 수염을 날리며 밀짚모자를 쓴 모네가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 정도다.

에뜨르따 해변에는 흡사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들이대고 물을 마시는 듯한 모습을 한 바위가 세 개 있다. 마을 해변 왼쪽 끝에 있는 바위를 나는 아버지 코끼리라 부른다. 오른쪽 해변 끝에 나와 있는 코끼리 바위는 아기 바위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고 바다에 잠긴 코도 가늘다. 아버지 코끼리 바위에 올라야만 그 뒤편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던 또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덩치는 작으나 코가 훨씬 더 육중해 보이는 바위가 바로 어머니 코끼리이다. 이렇게 세 식구가 에뜨르따 마을을 중심으로 오순도순 얘기하듯 바닷물에 코를 들이대고 서 있다.

아버지 코끼리 바위 옆 바다 중간에 서 있는 촛대바위가 프랑스 추리소설 '괴도 아르센 루팡'의 '기암성'에 등장하는 바로 그 바위이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 시대로부터 역대 프랑스 왕, 특히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칼리오스트로 백작의 보물 등 루팡이 훔친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바로 그 '관 모양 바늘'(The Hollow Needle)이다. 우리나라에는 '기암성'이라고 이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모파상은 이 바위를 코끼리 코 사이로 지나가는 요트라고 연상하기도 했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 보면 그렇게도 보인다.

에뜨르따는 모네가 가장 사랑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모네는 에뜨르따 그림만으로도 전시회를 열 정도였다. 모네가 후반 반생을 보내고 묻힌 지베르니가 여기서 140㎞밖에 안 되어, 그는 아예 이곳에 집을 얻어 놓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에뜨르따는 또 파리에서 200㎞ 거리이긴 하지만 프랑스 지식인들이 많아 찾았던 휴양지이기도 했다. 앙리 기 드 모파상은 에뜨르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단편 소설 중에는 '에뜨르따의 영국인'이란 작품도 있다. 작가 빅토르 위고도 여기서 '레 미제라블'의 일부를 썼다.

에뜨르따는 관광객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곳이 아니다. 프랑스 풍경 사진작가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위 말하는 픽처레스크하다(그림 같다)는 말이다. 서향의 바다라 황혼에 비치는 바다와 바위는 사진작가들 용어로 정말 '그림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행글라이더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지형이 묘하게 바람을 일으키게 생긴 데다 높은 바위 언덕이 있기까지 해서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인과는 달리 프랑스인은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드물게도 에뜨르따에는 골프장이 있다. 아버지 코끼리 바위 바로 옆 언덕이 바로 골프장이다. 바닷바람에 날려 엉뚱하게 날아가는 골프공의 장난에 한숨을 쉬면서도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맛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에뜨르따는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춘, 파리에 와서 조금만 용기를 내면 하루 만에도 다녀갈 수 있는 매력있는 곳이다.

재영 칼럼니스트·여행 작가 johank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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