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 칼럼] 당선무효에서 선고유예로

입력 2015-09-07 0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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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변호 때 요구한 맞춤 판결 나

1심 국민참여재판은 유죄 만장일치

국민 법 감정 무시, 봐주기 논란으로

무슨 항소심 판결이 이럴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유죄를 인정하고, 재판부가 당선무효(벌금 10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것을 2심이 뒤집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 2심 판결은 피고인 측이 "법관에게 선고유예의 재량이 있음을 고려해 달라"고 한 주장과 똑같은 '맞춤형 선고유예'로 결론 났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항소심 이야기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의 취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의혹'이나 '제보'를 앞세워 근거 없는 말을 해도, '의혹'으로 치장만 하면 면책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중앙선관위가 지방 차별성 발언만 해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정풍 운동과도 거꾸로 가고 있다.

진보파 조 교육감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난해 5월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시'행시'외시 등 삼시(三試)에 동시 합격한 보수파 고승덕 후보에 대해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에 대해서 해명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고 후보가 "영주권이 없다"고 해명했음에도 조 후보는 다음 날 다시 글과 라디오 방송에서 "캠프가 받은 제보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2차로 공표했다.

당연히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교육감이 원해서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배심원 전원이 유죄를 인정했고, 1심 재판부는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1심 패소로 33억여원을 들인 서울시 교육감 자리가 날아갈 지경에 처하자, 조 교육감은 전략을 바꿨다. 변호인단을 민변에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중도 성향 민병훈(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 등으로 바꾸었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김상환 재판장은 국민참여재판의 유죄판결을 뒤집었다. 조 교육감의 지난해 5월 25일 행위가 공직선거법이 엄중하게 처벌하고자 했던 무분별한 의혹 제기나 일방적인 흑색선전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오도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다음 날 2차 공표한 것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다.

김 재판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거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5촌 조카 살인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한 나꼼수의 주진우'김어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사라고 판결을 이상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보통 선고유예는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이 혈기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맨주먹을 휘둘렀을 때 등처럼 가벼운 사건을 처리할 때 쓰는 법원의 재량권 아닌가. 선거판 허위 사실 유포 혐의는 중대한 선거범죄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를 내린 데 대해 국민 법 감정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봐주기 논란이 이는 것 아닌가. 고검장을 역임한 한 인사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유죄 결정을 했으면, 그 틀의 범위 안에서 선고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물론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뒤집는다고 해서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에서, 누구나 납득 가능한 판결을 내리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결과가 사안이 민감한 조 교육감 재판에서 흔들리고, 그러잖아도 흑색선전과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치고 빠지기식 의혹 제기에 무죄와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진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검찰이 상고 의사를 밝힌 만큼, 대법원은 법에 정해진 대로 3개월 이내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최종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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