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22년 '국민 아버지'로…드라마로 맺은 인연도 '제 인생'
다른 때보다 힘들었다. 연기자 최불암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어느 사이에 그가 아닌 의 '박 반장'이나 의 '김 회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또 완벽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스스로 "만들어진 격 속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진짜 격은 무엇일까? 처음 한동안 드라마로 각인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진짜 격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면서 차츰 무언가 느껴졌다. 높은 판단력과 일에 대한 철저함, 가족 등 전통적 가치에 대한 존중, 사회에 대한 헌신, 따듯한 인간애와 겸손함 등, 어찌 보면 드라마가 만들어 낸 격보다 훨씬 높은 그의 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재소자 관련 활동이나 어린이재단 후원활동 등에 있어서는 '인기인의 체면치레'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를 연기자로만 생각했던 것도 그랬다.
달리 소개가 필요 없다. 그는 최불암. 18년, 22년의 전설이자 '국민 아버지'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한 번 했다. 이후 지역구에도 출마했으나 다행히(?) 낙선하여 국민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30년간 글로벌 차원의 어린이 구호단체인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 홍익대 앞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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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을 같이 했던 김상순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았다.
최불암: 의 동지 네 명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런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할 거라 생각했었다. 술도 많이 마시고, 건강관리도 따로 하지 않는데…. 혼자 이렇게 살아있는 게 괴롭다.
김병준: 바쁜 일정에 평소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최불암: 그랬다. 그러나 살아 있으면서 자주 못 만나는 것과 이 세상에 없어 못 만나는 것은 너무 다르다. 서로 자주 만나 건강 주의하라 채근도 하고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병준: 죽음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누가 세상을 떠났다 하면 '그래?' 하고는 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곤 한다. 자신의 죽음에는 그러지 않을 텐데….
최불암: 사람이 죽는 게 그저 텔레비전 한 번 껐다 켰다 하는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또 산다는 게 그렇다.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하고,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나 걱정해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각박하게 돌아온다. 죽은 사람을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는 세상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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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에서의 동지들이 진짜 동지인 것처럼, 에서의 부부가 진짜 부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그래서 늘 궁금한 것이 있다. 이런 역할을 할 때 자신의 성격이나 특성이 얼마나 묻어 나오게 되나?
최불암: 내 경우는 50대 50이라 본다. 즉 작가가 써 준 인물을 잘 분석해서 형상화시키는 것이 50, 자신의 성격과 특성을 담는 자기화가 50쯤 되지 않을까. 배우에 따라 형상화를 잘하기도 하고 자기화를 잘하기도 한다. 내 경우는 형상화를 더 잘하고 싶어 하는 편이다.
김병준: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불암: 그렇다. 인물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노력을 평생 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을 30대에, 그리고 를 40세에 시작했다. 실제 나이보다 25세나 더 많은 인물을 연기했다. 형상화시켜 내는 수밖에 없었다.
김병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최불암: 분석력이 뛰어난 배우가 좋은 배우다. 자신이 연기할 인물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형상화해야 하는 줄 알아야 한다. 그걸 잊어버리고 자신의 모습이 70이 나오고 형상화한 것이 30밖에 안 나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김병준: 분석과 형상화의 예를 하나 들어주면 좋겠다.
최불암: 이승만 대통령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분 닮은 데가 없어 못 한다고 했지만 방송사의 강청으로 할 수 없이 하게 되었다. 비주얼은 부족했다. 분장을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분석을 했더니 몇 가지 특징이 나왔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풍이 약간 들었었고, 황해도분으로 이북 사투리를 썼다. 그리고 교회 언어를 많이 사용하셨고, "반갑습니다. 만나서" 하는 식의 영어식 표현이 많았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말 떨림에 이북 사투리, 그리고 약간 목사조의 말투 등이 나오는 이승만 대통령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김병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 완벽하게 잘하셨던 것 같다. 그때의 그 모습이 이승만 대통령의 정형이 되어 있다.
최불암: 에서는 거의 분장을 안 했다. 내 모습 그대로 나갔다. 그랬더니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최불암 변신하다'로 나오더라. 일종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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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형상화된 것이건, 아니면 내면이 묻어 나온 것이든 최불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인간적이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아버지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희화화한 것으로 '최불암 시리즈'가 나왔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최불암: 친구인 박동규 당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처음으로 알려줬다. "당신 이야기가 학교에 돌아다니고 있어." 뭐냐 물었더니 최불암이 누구와 63빌딩에서 탁구를 쳤는데… 어쩌고 하는 것들이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모아서 보내 달라고 했더니 수십 장이 왔다. 다 재미있더라.
김병준: '독수리 5형제'가 생각난다. 독수리 5형제 TV 시리즈가 끝나자 최불암이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정말, 어떻게 이런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을까?
최불암: 6'29 민주화 선언 이후 데모가 확 줄었을 때였다. 데모를 하는 대신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희화화하는 일이 많았다. 입으로 하는 데모였던 셈이다. 같은 맥락 아니었을까? 에서 안방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김 회장'을 보고 저 인물을 희화화하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김병준: '김 회장'이 대통령처럼 권위적인 캐릭터도, 또 미움받을 캐릭터도 아니지 않나?
최불암: 전혀 아니었다. 특히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고집을 한 캐릭터였는데 늘 상대의 입장과 의견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아버지를 너무 유약한 존재로 그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비판이었지만.
김병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희화화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가족제도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거부감 내지는 부정 아니었을까?
최불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시리즈 속에 새로이 정립되어야 할 가부장의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 접근 가능하고 웃음도 주는 그런 존재로서의 어른….
김병준: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최불암: 아버지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를 물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어깨'라고 했다. 격동의 세월 속에 아버지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권위적이 되기도 하고 엄숙해지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세상도, 아버지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회도 아니다. 달라져야 한다.
김병준: 그 '어깨'의 아버지 혹은 부모들이 이제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소외받고 있다. 소위 '노인 문제'이다.
최불암: 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들과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이리저리 다니면서도 눈치를 봐야 하고 술을 마셔도 아는 집에 가서 마셔야 한다. 남에게 폐가 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김병준: 돈이 없는 경우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최불암: 시골은 또 노인들만 산다. 노인들끼리의 삶이 뭐 그리 좋기만 하겠나. 을 진행하며 돌아다녀 보면 때로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서로 섞여 살고 싶다는 말 아니겠나. 이게 또 가슴이 아프다. 국가와 정부가 신경을 좀 써 줘야 할 텐데, 과문해서 그런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김병준: 정부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특히 노인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 등이 그렇다. 가족 개념이 약화되는 만큼 국가가 그만큼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불암: 개인 각자도 삶의 가치와 질,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이 철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있다가 어느 순간에 노인이 되어 버렸다. 지금부터라도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틀도 조금 근사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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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자본주의의 틀을 근사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나이 어린 재소자들을 보살피고 있지 않나.
최불암: 보살핀다기보다는 관심만 주고 있는 정도이다. '드라마 인 에듀케이션'(Drama in Education), 즉 교육연극이라 하여 드라마를 만들고,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함으로써 교정 효과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시어터 인 에듀케이션'(Theater in Education), 즉 연극을 보게 함으로써 교정 효과를 높이는 일도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 방법들이다.
김병준: '드라마 인 에듀케이션'의 경우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최불암: 그렇지 않다. 요즘 뮤지컬이 대세인데, 이를 활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한다. 천안교도소의 경우 재소자가 1천 명 이상 되었는데 모두 참여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도 있지만 앉아서 코러스라도 하게 했다.
김병준: 다른 곳에서도 이런 활동이 일어나고 있나?
최불암: 사실 이 일은 정부가 일으킨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히 연극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계속 관심을 가지면서 같이 사업을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성장의 그늘이 짙다. 그 가장 어두운 데서부터 불을 밝혀야 한다.
김병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최불암: 가끔 가수 태진아 씨의 노래 '옥경이'를 생각한다. 무작정 상경한 오빠, 오랫동안 동생을 보지 못했다. 우연히 들른 술집,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인.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고개 숙인 옥경이." 우리 모두가 같이 극복해야 할 아픔이고 슬픔이다.
김병준: 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일도 수십 년 해 오셨다.
최불암: 운명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1981년 에서 '김 회장'이 길에서 만난 불쌍한 떠돌이 '금동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 키운다. 그러다 어머니의 권유로 입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내용이 방영되자 야단이 났다. 팬레터 수천 통이 쏟아져 들어오고, 김 회장과 최불암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김병준: 맞다. '금동이'가 입양된 아이였다.
최불암: 그런데 이게 어디 내가 칭찬받을 일인가? 작가는 따로 있는데. 공연히 미안한 기분이 든다고 했더니 제작부장이 그렇게 미안하면 어린이재단에 가서 아이를 하나 실제로 지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병준: 드라마가 인생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 하겠다.
최불암: 그런 셈이다. 이런 인생이 또 드라마로 들어가기도 했다.
김병준: 좋은 연기, 좋은 활동, 그리고 좋은 말씀 감사하다. 진정한 '국민 아버지'란 생각이 든다.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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