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6월 14일, 독일과 룩셈부르크 사이를 흐르는 모젤 강에 '프린세스 마리 앤 아스트리드'호가 떴다. 배엔 독일과 프랑스, 베네룩스 등 5개국 국무장관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5개국 국민들이 별도의 국경 통과 절차 없이 서로 자유롭게 이웃나라를 드나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점진적으로 국경 검문소를 폐쇄하는 데 합의했고 서명했다. 솅겐조약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 유럽 5개국에 불과한 작은 합의였지만 반향은 컸다. 조약에 가입한 솅겐국 수는 1995년 조약이 발효된 후 현재까지 26개국에 이른다. 섬나라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대부분 EU(유럽연합) 국가들이 솅겐국이다.
솅겐조약은 그야말로 '국경 없는 유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대륙 대부분 국가들은 국경을 개방하고 폴란드에서 포르투갈까지 4천㎞를 4억 명의 인구가 별도의 출입국 신고 절차 없이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됐다.
국가 간 자유왕래의 상징인 솅겐조약이 밀려드는 난민들로 위기를 맞고 있다. 난민은 주로 이슬람국가(IS)의 창궐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시리아 등 중동과 튀니지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적어도 하루 3천 명 이상이 전쟁과 폭력을 피해 유럽을 향하고 있다. 독일은 연내 난민 신청자가 8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자 그동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던 독일마저 곤욕스러운 처지다. 급기야 메르켈 총리가 "다른 EU 회원국들이 연대 정신에 기반해 적절한 수의 난민을 나눠 수용하지 않는다면 솅겐조약 하에 국경 없는 유럽의 이상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솅겐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대부분 EU 국가들은 난민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난민의 독일행 통로로 이용되는 헝가리는 난민의 서유럽행 열차 탑승을 막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아예 '무슬림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솅겐국인 영국 역시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EU의 탄생은 유럽인들에겐 축복이었다. 솅겐조약 역시 그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번 난민 사태는 유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웃이 무너지면 나 혼자 잘 살려 해도 함께 흔들린다.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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