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니 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새삼 느끼게 되고 곳곳에 제각각의 빛깔로 탐스럽게 매달린 열매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풍성한 계절이 돌아온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화창한 가을날에는 종종 이사 가는 모습도 보게 되지요. 이사는 봄철에 가장 많이 하지만 화창한 가을날에도 아파트 고층에 긴 사다리를 걸쳐놓고 이삿짐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 트럭 짐칸에 산더미같이 쌓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을 칭칭 감고 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무슨 짐이 저렇게 많은가?' '냄비라도 하나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던 것이 기억되기도 합니다. 요사이야 익스프레스라고 하는 큰 차로 깨끗하게 실어 나르는 시대라 아주 편리해 졌지요.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버릴 것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릴 것은 추려내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처음 소임을 맡게 되어 동화사에 처음 왔을 때 제 짐은 라면상자 한 개였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이것저것 늘어가게 되어 어느 날 큰맘 먹고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속이 다 시원해지더군요.
이처럼 우리의 삶은 편리함을 위해서 한 번만 필요해도 구입하다 보니 짐은 자꾸 늘어갑니다. 어린 시절, 냉장고가 없어도 상한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고, TV가 없어도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도 많이 읽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대인관계 그리고 각자의 문화활동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생활보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을 채우고자 현대인들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과학화되어 생활도 편리하고 안락해 졌지만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전해 들은 한 신도의 선배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빈 몸으로 미국에 가서 어렵게 공부하고 작은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사업이 번창하여 2천억원 정도가 되는 재산을 모으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경영하던 사업에 작은 사고와 사회적인 경제난으로 800억원 손실로 한 해 적자를 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이유로 살 의욕이 없이 자살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폐인이 되어 곧 죽을 사람처럼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800억원을 손해 봤어도 1천200억원이나 남아 있는데 '죽고 싶더라'는 것이죠.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100억원도 아니고 1천200억원씩이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종종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재벌가들의 재산 다툼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가진 것보다는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니 억울할 수밖에요.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으면 얼마나 자신을 학대하고 불행하게 만들어 가는지를 가까운 곳에서 느끼게 되었답니다.
신도님들께서도 말씀하시더군요. 한 번도 입지 않고 장롱에 넣어둔 옷가지들이 많고 잘 쓰지 않으면서 찬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그릇들이 산더미같이 된다고 바자회를 열면 다 가지고 나오겠다고요.
혹시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좋아 보여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행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이들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지요?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초라하고 불행하게 하지 맙시다. '스님 마음은 늘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하며 반문하는 신도님들도 있습니다. 노력해 봅시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무병최리 지족최부 후위최우 이원최락(無病最利 知足最富 厚爲最友 泥洹最樂)
병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요, 만족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재물이다. 후덕함은 가장 큰 친구요, 열반은 최상의 즐거움이다.
-법구경 제15장 안락품(安樂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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