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은 당 대표·청와대 의중 결정적
일부 국회 입성 후 대선 과정서 배신
19대 명단 일방 발표에 비대위원 사퇴
김무성 '비례 축소' 주장 이해할 만해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지역구를 재획정해야 하는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야는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두고서 대립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례 의석을 10석이라도 줄여서 농촌 지역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3공화국 헌법에 의해 도입된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각 정당이 얻은 총투표수에 비례해서 의석을 갖도록 하자는 유럽식의 비례대표제와는 뿌리가 달랐다. 최근에 김종필 전 총리는 회고 대담을 통해 5'16 주체 세력 중에는 고향이 이북이라서 마땅하게 지역구에 출마할 수 없는 사람이 꽤 있어서 이들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고 말한 바 있다.
비례대표 공천은 여당의 경우는 청와대, 그리고 야당의 경우는 당 지도부의 의중이 결정적이다. 새누리당에 오래 몸담았던 당직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는 당 총재실에서 비례대표 명단이 내려왔고, 그 전에는 청와대가 만든 리스트가 비례대표 명단이었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그들이 집권당이었을 때에는 사정이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례대표 공천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였다. 뒤늦게 당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해야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여의도 연구소장이던 박세일 교수에게 위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인데, 박 교수 자신과 박찬숙 전여옥 나경원 이주호 진수희 등 쟁쟁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국회에 입성한 비례의원들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 쪽에 줄을 섰다. 그에 앞서 박세일 의원은 세종시 건설 문제를 두고 박 대통령과 아예 결별하고 말았다. 2007년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고배를 마신 데는 비례대표의 '배신'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은 철저하게 친이 세력이 좌우했는데, 당시에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는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해서 의원이 됐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2011년 가을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붕괴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비상대책위원장이 돼서 2012년 4'11 총선을 지휘하게 됐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바꾸는 등 쇄신 작업을 거쳐 총선을 준비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공천에 관한 몇 가지 기준을 정했지만 비례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위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의 19대 비례대표 공천은 사실상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전적인 재량에 맡겨졌던 셈인데, 피치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다. 18대 비례대표 의원들은 대부분 불리한 지역구에 차출돼서 낙선했거나 아예 정계를 떠나버렸다.
비상대책위원이던 나는 19대 비례대표는 그해 대선을 치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표된 명단을 보니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김종인 박사는 비례대표 명단을 보고 비대위원직을 사퇴해 버렸고 언론은 나도 사퇴하느냐고 물어 왔다. 내가 잘 알던 한 정치인은 "쌀이 세 가마이면 뉘가 한 말이 있는 법"이라며 나를 달랬다. 그때 나는 "박 대통령이 전여옥 나경원 진수희 같은 비례대표 의원이 다시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구나"고 느꼈다.
김무성 대표가 비례대표를 줄이고 경북 등에서 현행 지역구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김무성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9대 비례대표 의원들이 역대 최악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현직 비례 의원이 다시 비례대표로 출마할 수도 없으니, 여당 내에선 비례대표 의석을 지키기 위해 울어줄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김무성 대표의 주장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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