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7>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

입력 2015-09-04 01:00:05

"공천권 쥔 국회의원 눈치만 봐" vs "공천제 없으면 토호세력 장악"

지방선거에서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공천제' 존속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앙당이 공천권을 쥐고 있어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는데다 일부 국회의원이 사적으로 후보를 추천하는 폐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완전히 폐지하면 지역 토호세력 진출이 쉬워지고 정치 소수자, 신진 정치인이 참여할 길이 막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폐지해도 문제, 유지해도 문제인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2006년 전면 도입,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10년

우리나라에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전면 도입된 것은 2006년 지방선거 때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으로 기초의회 정당공천제가 지방의원 유급제, 비례대표제 등과 함께 도입됐다. 지방선거에서 비공식적으로 내부 추천이 이뤄지는 부작용을 막자는 목적에서 정당공천제가 시행된 것이다. 정당공천제 시행 이전에는 내부 추천을 통해 지역에서 입김이 센 토호세력이 각종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3년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최한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공청회에서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당공천제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제도 덕분에 책임정치 구현, 유권자에게 정보 제공, 자질 높은 후보 공천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당은 지방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결과물을 책임지는 유일한 정치기구로 역할을 하는 공천제가 없으면 책임 정치는 구현될 수 없다"며 "유권자가 모든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당 소속으로 유권자 개인 연고보다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투표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제도 유지에 힘을 실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2012년 대선 때 양당 후보 공약으로 나란히 나왔다. 안철수 의원이 정치개혁을 하려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시장,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이를 대선 공약에 포함시켰고,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다.

처음에 새누리당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지지했다. 2013년 4'24 재보궐 선거 땐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며 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에 공천하지 않았다. 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정당공천제 폐지안을 담은 공천제도 개혁안도 내놨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지난해 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현역 의원들을 등에 업고 지방선거에서 또 이길까 봐 우려해서였다. 기초단체장과 지역구 의원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 의정 활동 협조 및 지역관리가 힘들고, 이후 총선에서 '현역 군수' '현역 구청장' 출신 후보가 출마하면 차기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새누리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예전에 내가 모셨던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두 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4년간 군청과 업무 협조가 잘 안 됐다. 만약 지방선거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면 현역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의정 활동을 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회의원이 휘두르는 공천권, 예속된 지방 정치

하지만 정치개혁의 수단으로 등장한 정당공천제의 폐해도 많다. '동네 일꾼' 역할을 해야 할 구청장, 군수, 기초의원들이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텃밭으로 인식되는 대구경북(TK)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을수록 당선에 유리해진다. 기초의원들이 의정 활동과 조례 입법 활동에 애쓰기보다 해당 지역구 의원에게 잘 보이는 데 노력을 쏟는 역효과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대구시의회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29명,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은 단 1명에 불과하고, 경북도의회도 새누리당 55명, 새정치연합 2명, 무소속 3명으로 새누리당이 독식하고 있다.

또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정부를 감시해야 하는 의회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시장과 구청장 등 단체장의 소속 정당이 지방의회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여론조사를 통해서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매일신문을 비롯해 9개 전국 유력 지방 일간지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한다'(67.6%)가 '현행 공천제를 유지해야 한다'(22.7%)에 비해 3배나 높았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지역정치의 중앙정치 종속 방지'(41.4%), '공천헌금 등 공천비리 방지'(30.0%) 등을 이유로 꼽았다.

◆제도 개혁이냐, 폐지냐?

공천을 경선으로 해 공천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새누리당 경북도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공천을 대부분 여론조사를 통해 진행했다. 현역 의원이 공천에 직접 개입하면 탈락한 후보 쪽에서 불만을 제기, 공천 잡음이 나올 가능성이 커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의성군수와 영주시장 공천 때는 후보 합의로 여론조사 50%는 당원 중 무작위로 뽑아 체육관 직접 투표로 이뤄졌다. 이정률 새누리당 경북도당 정책홍보실장은 "경북은 당세가 강한 지역이어서 현역 국회의원이 개입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 후보 4, 5명이 사전에 조율하지 못하면 후유증을 감안하면서 경선에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당공천제를 폐지 대안으로 '정당임의표방제'를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A후보가 "나는 새누리당 성향"이라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선거 출마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표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한 성향을 파악 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앙정치 상황을 잘 아는 국회 관계자는 "정당표방제는 정당 터전이 마련된 서구사회에는 맞을지 몰라도 우리 정치 실정과는 맞지 않다. 대구경북에서는 새누리당만 표방하는 후보가 나올 수 있다"며 "정당공천제의 문제는 정당공천 자체가 아니라 국회의원 측근 위주의 공천이 문제다. 그러면 이 공천 문제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때문에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는 정치 관계자들의 이해득실과 상관없이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정당표방제는 물론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우리나라 정당은 '바닥'에 충실한 당원 체제가 아니며, 선거를 제외하고 평소엔 주민들의 정치적 의견을 모으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며 "주민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은 정치에 진입할 수 없고,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거나 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기초의원이나 단체장으로 추천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지역 토호세력이 지방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그는 "토호세력은 정당공천제 도입 전에도 존재했다. 지금도 정당공천받은 사람들은 정당에 기여도가 높은 토호들"이라며 "정말 주민들을 위해 움직이는 역량을 가진 토호들도 많다. 지방정치가 중앙 국회의원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토양이 마련되기 전엔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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