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호남 등 권역별 자족시스템 갖춰 균형발전 추진하자"
변창흠(50) SH공사 사장은 학자 출신 최초의 서울시 출자기관 CEO다. 경북 의성 산골에서 자란 만큼 지역과 균형 발전에 관심이 높은 개혁적 인사다. 빈부 격차, 균형 발전, 지방분권 등이 현안으로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전문가로 등장한다. 대학원 시절 전 재산인 전세금 2천만원을 빼내 아내를 유학 보낼 정도로 결단력도 있다.
변 사장은 개혁적인 전문가나 학자 출신도 공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SH공사에서 도시 재생과 주거 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꿈꾼다. 특히 테마형 주거단지를 조성해 주택이 단순한 재산을 넘어 삶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그로부터 균형 발전과 도시 재생의 비전을 들어봤다.
-대학생활은 어떠했나.
▶실물경제에 관심이 있어 경제학을 택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경제사 강의 등이 너무 따분했다. 수업시간에 '물가가 올랐으니,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나'라는 식의 강의는 듣지 못했다. 현실은 없고, 이론만 있었다. '학문이 왜 이래?'란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 두 차례 휴학했다. 한 번은 휴학하고 시골 갔다 놀란 부모님 때문에 1주일 만에 취소하고 복학했다. 2학기 때 휴학 중 친구 리포트를 같이 고민하다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산의 3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인데, 경제학 서적에는 자본과 노동만 나오고 토지가 없다는 점이 의아했다.
최근 그에 대한 해답을 신고전경제학을 통해 알게 됐다. 과거에는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계급, 노동을 하는 노동자계급, 토지를 소유한 지주계급이 있어 각각 이윤, 임금, 지대 등을 대가로 받았다. 하지만 자본가계급은 지주계급이 노동을 억제하며 무위도식한다고 보고 막대한 자본을 뿌려 저항을 없애고 땅을 차지해 토지도 일종의 자본으로 편입시켰다.
-대학원에서는 어떤 쪽에 관심을 쏟았나.
▶토지에 대해 연구를 집중해보겠다는 생각에 학부 졸업 뒤 부동산 강좌가 있는 환경대학원에 들어갔다. 여기서 토지를 공부하다 지역개발 분야에 더 빠졌다. 박사 논문은 지역개발과 관련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해 썼다. SOC 같은 인프라가 지역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동은 노동자가, 자본은 자본가가 투입하지만, 주요 인프라는 국가가 투자한다. SOC를 새로운 자본으로 볼 때 이것이 어떻게 지역 발전에 영향을 미치느냐를 연구했다.
-SH공사와 첫 인연은.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SOC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마침 SH공사가 SOC 전문가를 뽑았다. 서울시가 1989년 택지개발 전문기관으로 SH공사를 설립했는데, 수도권 200만 호 건설을 위해 택지를 개발하고 난 뒤 땅이 없었다. 공사가 1996년 도로, 주차장 건설 등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을 검토하던 시기에 SOC 분야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여기서 어떤 사업을 벌였나.
▶민자 유치에 관심을 가졌다. SH공사는 그동안 택지개발과 임대주택 건설 등이 주요사업이었는데, SOC 건설 참여 경험은 거의 없었다. 민자 유치의 새 틀을 만들자고 서울시 등을 설득했다. 결국 '우면산 터널' 사업에 SH공사의 참여를 성사시켰다. 서울시 민자 유치 1호 사업이 됐다. 용산역 국제업무지구 등 SH공사가 그동안 출자한 6개 사업 중 우면산 터널사업이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다. 공사가 우면산 터널에 지분 25%를 갖고 있고, 역대 사장이 모두 공사 출신이다.
-서울연구원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박사 논문을 마친 뒤 2000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 들어갔다. SOC 연구와 SH공사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신나게 연구했다. 보통 연구원 1명당 1년에 2, 3개를 연구하는데, 나는 7, 8개 과제를 연구했다. 정부가 1989년 수도권 신도시 개발 방안을 발표한 뒤 1992년과 1993년 경기도 분당, 일산, 부천 등 5개 신도시에 주민들이 대거 입주하고,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교통 체증, 환경오염 등 난개발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했다. 당시 핵심 연구과제는 수도권 난개발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성과는.
▶첨단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엔터테인먼트산업 집적지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조성 사업이다. 당시 상암동 DMC 연구팀장을 맡아 택지 공급 기준 마련, 시공업체 선정 실무 작업, 건축물 심의 등을 도맡았다. 당시 고건 서울시장부터 현 박원순 시장까지 14년간 상암동 DMC 관련 전문가로서 자문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뭘 가르쳤나.
▶도시행정과 정책, 부동산 등을 가르쳤다. 특히 지역 균형 발전에 관심이 많다. 지역개발, 환경문제, 균형 발전 등에 관심을 갖다 보니 참여정부 당시 각종 자문을 많이 했다. 동북아중심추진위, 국가균형발전위, 지속가능발전위, 빈부격차차별시정위, 국민경제자문위 등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11월 SH공사 취임 후 어떤 것을 바꿨나.
▶인사를 혁신하고, 새 교육시스템을 도입했다.
우선 처장급 전문가를 모셨다. SH도시연구소장에 서울연구원 부원장 출신을, 홍보처장에 삼성그룹 출신을, 도시재생처장에 영주시디자인단장을 역임했던 분을, 주거복지처장에 관련 전문가를 각각 영입했다. 또 기획경영본부장에 민간 건설사 사장 출신을 모시는 등 새로운 문화와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가를 영입해 기존 조직과 결합시켰다. 교육기능도 크게 강화했다. 아카데미를 만들어 직원은 물론 임대주택 관리회사, 도시재생 입주민 교육 등을 담당하게 했다.
-SH공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도시 재생과 주거복지 서비스 전문기관이다.
택지개발과 주택건설, 임대주택 관리 등 3개 영역이 그동안 공사의 주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제 바뀔 때가 됐다. 1990년대 중반 이미 택지개발은 끝났다. MB(이명박 대통령)가 취임 후 도심 외곽에 대규모 보금자리주택을 개발했는데, 이것도 2017년, 2018년 되면 모두 끝난다. 택지개발이란 업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시가지 내에서 (택지를) 다시 쓰고, 밀도 있게 쓰고, 잘 써야 한다. 이게 '도시재생'이다. 과거에는 택지개발촉진법, 보금자리주택법 등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쉽게 건설했지만, 이젠 주민과 서울시를 잘 설득해 고도의 창의성을 가진 도시재생전문기관이 돼야 한다.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공공 개발자가 돼야 한다. 지역 발전과 지속 가능한 자산 관리를 목적으로 도시를 재생산하고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SH공사의 또 하나의 방향은 '주거복지서비스'다. 임대주택 17만 가구를 관리하면서 입주민은 물론 주거 상담, 집과 마을 정비, 주택 지원과 상담 등 종합적인 지역맞춤형서비스 전문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SH공사에서 꼭 실현하고 싶은 꿈은.
▶'실행 가능한 주거복지모델'을 만들고 싶다. 주택은 단순히 상품이나 재산을 넘어 마을의 일환, 문화, 공동체, 휴식공간, 삶의 터전이다. 현재 소규모 테마형 주택단지를 시범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홀몸노인 주택단지를 비롯해 청년협동조합주택, 육아협동조합주택, 예술인협동조합, 의료안심주택, 모자안심주택 등이다. 장기적으로 대규모 테마형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태양열 발전소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쓸 수 있는 마을도 구상 중이다.
◆"균형은 나눠먹기와 달라…인재할당제 필요"
변창흠 사장은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특히 균형 발전을 위한 권역별 자족시스템과 인재 할당제를 강조했다.
그는 "서울과 지방, 서울 안에서도 강남과 강북이 차별돼서는 안 된다"며 "MB정부는 2009년 수도권 규제를 왕창 풀면서 지역 균형 발전이나 지방분권은 도외시했다. 이때 균형 발전과 분권운동단체가 뭉쳤다"고 말했다. 이어 "균형 발전 없이 분권만 강조하다 보면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경쟁이 공평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균형발전에 대한 목표치가 있고, 그런 기준 아래에서 분권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변 사장은 수도권과 함께 대구경북권, 호남권, 부산울산경남권, 충청권, 강원권 등 각 권역별로 모든 기능을 갖춘 자족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 업무, 일자리와 취업, 대학, 병원, 문화시설, 경제권 등이 권역별로 완벽해지면 서울의 대학이나 병원에 가지 않고도 잘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균형은 나눠먹기나 균등 배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이 자율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로스쿨, 의'치대, 한의대 등에 적용한 인재할당제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이전한 공기업도 해당 지역 출신들을 일정 정도 지분을 배정해 뽑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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