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남은 임기는 진정 통할까

입력 2015-09-01 01:00:05

요즘 국민 모두 핏기없는 얼굴이다. 경제는 날로 곤두박질치고 중국발 악재에 요동치는 주식시장은 아예 신문 들추기가 무섭다. 미국 금리 인상과 맞물려 '9월 위기설'까지 나돈다. 게다가 북한 도발에 국민들 관자놀이가 연일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시쳇말로 하루하루가 '심쿵'의 연속이다. 1천100조원을 넘었다는 가계 부채에 서민은 속이 바짝 타고, 깊은 한숨에 얇은 월급봉투가 먼저 풀이 죽는 상황이다. 청년 실업률은 낙담을 넘어 아예 분노 모드다.

바닥을 기던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신기하게도 50% 선에 다가섰다. 이례적인 군복 차림과 남북고위급 접촉 때 보인 결연한 의지의 영향 때문이란다. 그런데 참 어색하다. 왜 여전히 국민 표정이 어둡고 입술은 굳어 있을까.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 의욕에도 왜 감동이 없을까. 감동은 1천만 명이 본 영화 '암살'에서만 확인하는 그런 감정인가. 정치가 감동과 공감의 일차방정식임을 국민은 안다. 정치가 복잡한 공학이라고 우기는 부류는 정치인뿐이다.

박근혜정부 임기가 막 절반을 넘어섰다.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이 임기를 잘 채우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솔직히 남은 시간이 더 걱정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보듯 노동개혁 등에 대한 국민감정에 울림이 전혀 없다. 총선을 앞둔 정치는 정쟁의 가속 페달을 계속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 먹먹한 감동의 피날레가 아니라 박수치고 떠들다 끝나는 쇼 장면을 떠올리면 이내 국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박 대통령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지도자다. 이는 국가에 자신을 헌신할 의지와 자세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혹시 언론이 지어낸 말이거나 '자기 최면'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적어도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넓은 시선으로 국가와 국민을 보거나 자기 약점까지 드러내고 소통하며 상대를 설득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는 국민은 많지 않다.

개혁은 지도자 스스로 바뀌는 데서 출발한다. 세상을 바꾸려 들기 이전에 자신부터 바꾸는 '셀프 개혁'이 먼저다. 때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원칙 아니라 더 큰 것까지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수긍하지 못하는 정치 패러다임과 스타일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면 이는 철학이 아니라 고집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통령이 자기 개혁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영국 리서치회사가 최근 독일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독일을 상징하는 대표가 뭔지 묻는 질문이다. 그 결과 폭스바겐(63%)과 괴테(49%), 메르켈 총리(45%)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현직 총리를 독일의 상징으로 여기는 독일 사회와 그 시민 의식이 매우 생소하지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지도자 메르켈을 신뢰하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고 그의 정치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소리다.

"영국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킨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 이것이 나의 정치적 삶의 목적이다." 1920, 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 영국 보수당 당수로 세 차례나 총리직에 올랐던 스탠리 볼드윈의 말이다. 그는 안정을 추구한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국정 실책도 있었고 노동당에 패배해 권력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노동당의 요청에 따라 연합내각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불황과 실업자 문제를 이겨냈다. 보수당에 등을 돌린 윈스턴 처칠을 다시 불러들인 것도 그였다.

독일 국민이 왜 메르켈을 독일의 상징으로 여기고 영국인들이 볼드윈을 기억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들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삶의 목적을 이뤘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정치 철학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 삶의 목적에 더 집중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은 달라야 한다. 국민 손이 부끄럽지 않게 지도자로서 국가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만일 아무 변화가 없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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