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힐링토크]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젊은이를 키우고 싶다-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

입력 2015-08-31 02:00:00

"남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 내는 사람이 21세기 인재"

배철현 교수.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배철현 교수.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한 기업인의 꿈으로 세워진 서울북촌의 건명원. 21세기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한 기업인의 꿈으로 세워진 서울북촌의 건명원. 21세기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며 더욱이 남을 흉내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소문과 같은 엑스트라에 의지하지 않고 나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요즈음 가장 '핫'한 교수 중 한 명인 배철현(53)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방송과 강의, 글쓰기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최근 열정을 쏟고 있는 분야는 새로운 교육운동이다. 올 초에 인문학과 과학, 예술을 아우르는 21세기의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서울 북촌에 세워진 '건명원'(建明苑)에서 수요일마다 젊은이를 모아놓고 열강 중이다.

신학에서 출발한 배 교수는 고전문헌학으로 전공을 바꿔가며 13년을 하버드에서 보냈다. 2000년 귀국해 지금은 경기도 가평에서 살고 있다. 건명원에서 만난 배 교수는 조만간 10여 일 정도 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산하고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모다. 왜 산으로 가는가.

▶3년 전부터 나 스스로를 각종 모임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모임은 편견을 강화시키고 무식을 웃어넘기게 만드는 관성이 있다. 올해 초에는 산골에 들어가 열흘 정도 손톱만 봤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TV 프로그램도 맡고 있다.

▶한국은 각 분야에 일등은 존재하지만 일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진국으로 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올바른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액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교수 중에는 액션이 지나쳐 비판을 받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정치적으로 열심히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미션이다. 다른 진영에 있다고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 나름대로 현실 문제에 대한 미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명원 탄생의 기획자이자 산파 역을 한 것도 일류 한국을 만들려는 액션 중의 하나인가.

▶건명원에서 강의하는 교수 8명은 스스로 '실패를 각오한 특공대'라고 말한다. 지금은 천 명이 밥상에 남은 숟가락 하나를 갖겠다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스스로 원하는 밥상을 만들고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그것이 건명원의 목표다. 가지 않았던 길이기에 당연히 실패를 각오할 수밖에 없다.

-왜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인가.

▶남들이 보는 방식, 남들이 강요한 시각이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나만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들을 위해 비록 서투르더라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

-30명 모집에 무려 900명이 넘게 지원할 만큼 건명원은 관심을 모았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정도밖에 줄 수 없다. 교수도 학생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을 기존의 선발 기준과 달리해 뽑느라고 뽑았지만 틀 안에서 뛰쳐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학생 선발이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어떤 선발 방법인가.

▶지방대학 학생을 뽑거나 고졸을 뽑는 식이다. 지금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치고 나갈 수 있는 토양이 덜 돼 있다. 물도 충분히 주지 못했고 싹도 안 나온다. 2학기 수업에 고민이 많다.(건명원은 20대 30명을 모집해 1년 동안 매주 수요일 4시간씩 과학 예술 인문학에 대해 토론식 수업을 하며 마지막 한 달은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모두가 무료다)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건명원식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기울기가 있고 불안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수용해 미래의 굳건한 발판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 공헌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 경전이나 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수천 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이 고전이고 경전이다. 이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고전 백 권을 읽게 하고 경전을 읽는 것이 생활화 돼 있다. 이를 통해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전을 읽고 경전을 생활화할 수 있나.

▶엄마가 읽고 자식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열네살 때 칸트를, 공자나 프로이트 등을 들려주며 지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한 인간의 세계를 결정하는 힘은 엄마들에게서 나온다.

-엄마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혁신을 해야 한다. '좋은 대학 보내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인간을 만드는 꿈을 꾸어야 한다.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일까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유명대학을 안 가도 혁신을 할 수 있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내 아이가 성적이 몇 등이냐'를 묻기 전에 아이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앞으로 기업은 '착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성적이 몇 점이냐는 무의미하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알고 남에게 이득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면 착한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예수님 모두가 혁신을 이룬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고자 혁신을 했다.

-리더의 덕목으로 '묵상과 자비'를 강조한 것도 그러한 이유인가.

▶묵상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어야 내가 가진 편견과 아집을 깰 수 있다. 묵상을 하다 보면 내가 불쌍해 보인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포인트가 자비이고 연민이다.

-왜 리더에게 자비심이 필요한가.

▶리더는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해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리더는 다른 삶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읽는 능력과 촉을 가져야 한다. 이런 리더가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위대한 나라를 만든다. 세종은 위대하다. 불쌍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지 않았는가.

-대통령을 위해 과거 왕들에게 했던 경연(經筵)을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가르치기보다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고 싶다. 생각을 소프트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자세가 리더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종교학자다. 종교학자와 종교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족과 공동체에 힘을 주는 사람이 종교인이다. 종교학자는 학문 분야의 하나로 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벌주고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종교학자로서 무엇을 추구하는가.

▶21세기에 맞는 생각이 무엇일까, 사상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또 한국 사회를 붙잡고 있는 구태의연한 종교와 생각들을 새롭게 펼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가들이나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함은 보통 사람들이 숭배하는 과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거침없이 제시한다. 깊은 묵상을 통해 모두가 특별하고 유일하게 주어진 자신의 심연 안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인가.

▶이데올로기나 물건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불행의 시작이다. '해피니스'는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것이다. 내 스스로를 찾는 과정이 행복이다. 고집하지 않고 변하려는 마음이 행복의 씨앗이다. 행복을 좇는 것은 신기루를 잡으려 하는 것과 똑같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 인터뷰의 제목이 '힐링토크'다. 힐링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힐링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나를 힐링시켜 주지 않는다. 힐링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묵상을 통해 자신의 바닥을 바라본 다음,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 바로 힐링이다.

-꿈이 있다면.

▶종교가 가진 경외심이나 인류 보편적인 가치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이런 것을 알리는 통로가 되고 싶다. 강의나 책, 다큐 등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외심을 말하고 싶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라는 시를 지어 미국의 진정한 독립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처럼 다른 사람의 길을 무작정 따라 걸으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남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실이나 인생을 추종하지 말고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상태에 의연하게 대처해 자신만의 별을 창공에 달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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