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수 없는 가족, 들리는 딸의 마음
청각장애 부모를 둔 건청인 자녀를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라고 한다. 코다는 부모와 비장애인들의 통역을 맡아 청각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돕는다. 이처럼 코다는 큰 역할을 해내지만, 성장하고서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반드시 온다. 자신이 코다인 이길보라 감독은 가족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2014)에서 청각장애인 부모와 코다 자녀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미라클 벨리에'는 말로 하는 언어와 수화 언어 등 이중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코다 소녀 폴라가 노래를 알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는 사랑스러운 프랑스 가족 드라마이다.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청각장애인 부모의 수화를 통역하는 소녀의 손놀림이 쿨하다.
파리 근교의 시골 농부인 벨리에 부부와, 청각장애인인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고등학생 소녀 폴라는 듣지 못하는 부모의 입이 되어 치즈를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 학교와 부모의 일 돕기로 내내 바쁜 폴라는 학교에서 모범생도 아니고 인기녀도 아니다. 시큰둥하게 학교와 집을 오가던 폴라는 파리에서 온 전학생 가브리엘을 짝사랑하게 되고, 그를 보기 위해 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한 번도 소리 내어 노래한 적 없던 폴라의 천재적 재능을 엿본 선생님은 파리의 명문 합창학교 오디션을 제안하고, 가브리엘과의 듀엣 공연 기회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들을 수 없는 가족과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로 바쁜 폴라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떠나면 찾아올 혼란을 걱정하고, 오디션을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
청각장애 가정에서 자란 프랑스 작가 베로니크 폴랑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수화, 소리, 사랑해! 베로니크의 CODA 다이어리'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일반인 딸의 일상을 유쾌한 분위기의 코미디로 만들었다. 성인이 되면서 가족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꾸려야 하는 자녀와 부모의 이별 순간은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특별한 가정을 배경으로 하기에 특별한 갈등이 생겨나고, 그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지켜보는 과정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이다.
'들리지 않는 건 내 정체성이야'라고 말하는 아빠와, 자신의 미모를 한껏 과시하는 엄마, 그리고 엉뚱하고 개성적인 남동생 모두가 청각장애인이지만, 들리지 않는 그들의 상태는 정체성일 뿐 전혀 장애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수화와 목소리로 말하는 폴라의 이중 언어 능력이 쿨하고 부럽기만 하다. 소를 키우고, 치즈를 만들어내는 시골 농가의 일상 또한 풍요롭게 보인다.
폴라가 노래에의 재능을 발견하자 두 개의 주요 플롯에 가파르게 전개된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도전 플롯, 그리고 미래를 위해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하며 겪게 되는 갈등 플롯. 여기에 폴라의 로맨스, 아빠의 시장 선거 도전기, 남동생의 로맨스 해프닝, 엄마와의 증폭되는 갈등 등의 에피소드들이 자잘하게 배치된다. 베리에 가족 구성원들의 개성이 뚜렷하여 영화는 여러 가지 지켜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탄광촌의 발레 소년 이야기를 그린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 FBI에 쫓기는 반전운동가 부부와 피아노 영재 아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미국영화 '허공에의 질주'(1988)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미라클 벨리에'와 이 영화들은 모두 끈끈하게 뭉친 가족애와 천재성을 가진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아픈 순간을 포착한다. 독일영화 '비욘드 사일런스'(1996)에서 음악에 맞추어 수화로 춤을 추는 감동적인 장면도 떠오른다.
폴라 역의 루안 에머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이스 프랑스' 준우승 출신으로 이번 영화로 인해 배우로서도 성공적인 입지를 다졌다. 폴라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고, 샹송의 거장 미셸 사르두의 스테디셀러 명곡들의 향연이 귀를 즐겁게 한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일 뿐." 날개를 편 아이의 비상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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