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를 따 물고 돌아 서잔다
이토록 갈피 없이 흔들리는 옷자락
몇 발자국 안에서 그날
엷은 웃음살마저 번져도
그리운 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
어쩌면 오직 너 하나 만을 위해
기운 피곤이 보랏빛 흥분이 되어
슬리는 저 능선
함부로 폈다
목놓아 진다.
(전문. 『박용래 시선-강아지풀』. 민음사. 1975)
이 시를 옮기고 나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힘겨운 우리의 삶에, 우리의 시대에 이 사랑에 대한 시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40년도 전에 쓰인 가난하고 소박한 한 시인의 시는 지금 우리에게 박제된 유물 외에 무엇일 수 있을까? 시집의 속표지에는 시인의 친필 사인이 적혀 있다. 박용래…. "함부로 피었다 목놓아 진" 엉겅퀴처럼 그도 이미 이 지상에 없고 그의 사랑도 흔적 없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노래란, 시란, 시간의 모래 속에 묻혀버리는 신기루와 같은 것일까?
사랑에 대한 노래가 체제 순응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던 시대가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노래만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던 한 편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불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고통스러운 사회는 보수라는 한 날개만이 아니라 진보라는 한 날개가 같이 유지하고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보적인 척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이 찢겨진 삶을 보수적으로 꿰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이토록 갈피 없이 흔들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먼 미래의 우리 삶을 위해 더 나은 것은 아닐까?
엉겅퀴의 사랑을 읽다가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 하지만 사랑은 충만이 아니라 '없음' '너무 멀리 있음', 그 결핍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자리는 향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준비하는 자리이다. 진정한 사랑의 노래, 사랑의 시가 역설적으로 가장 혁명적인 무언가가 될 수 있는 단초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투덜거리고, 욕하고, 빈정거리기보다는 차라리 사랑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운 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지'만, 지금 우리 함부로 피었다 함부로 짓밟히지만, 목놓아 목놓아 지는 사랑을 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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