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제한전'으로 종결시키려 한 트루먼의 '새가슴'은 우리 입장에서 두고두고 회한을 되씹게 하는 패착이었다. 트루먼이 '중공'의 기습을 중국 본토의 핵 공격으로 분쇄하자는 맥아더를 해임하고 전역(戰域)을 한반도 내로 좁힌 이유는 확전(擴戰)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당시 트루먼은 6'25가 미국을 더 중요한 유럽에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소련의 기만전술이며, 중국을 전면 공격하면 소련이 서유럽으로 밀고 들어갈 것이라고 봤다. 당시 합참의장 오마 브래들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엄청난 오판이었다. 스탈린이 서유럽 공격을 심사숙고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서방이 예상했던 서독이 아니라 '무엄하게도' 소련의 '종주권'을 거부한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였다. 하지만 그것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결성으로 서방이 재무장하자 포기했다.
이러한 오판 위에 세워진 제한전 전략은 의도대로 먹히지 않았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휴전협정은 2년이 넘도록 질질 끌었다. 그래서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았다. 맥아더가 이미 제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1952년 1월 "10일 안으로 변화가 없다면 중국 해안을 봉쇄하고 만주를 공격하겠다"고 소련에 통보했다. 석 달 뒤 합참은 '원자폭탄의 전술적 사용'을 트루먼에게 건의했다. 트루먼의 후임 아이젠하워도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도 정부를 통해 중국에 전달했다.
트루먼이 애초에 맥아더가 하자는 대로 했다면 중국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핵 공격을 하겠다는 선언 곧 확전을 불사한다는 의지의 표명만으로도 전쟁의 향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 방증의 하나가 휴전협정의 중대 걸림돌이었던 전쟁포로 자유송환 문제에서 중국이 양보한 사실이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미국의 뒤늦은 핵위협이 그 이유였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트루먼의 제한전 전략은 종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쟁을 2년 이상이나 더 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분단의 재확인이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배워야 할 것은 '확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면 적(敵)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연 이런 교훈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있는가?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포격 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은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게 한다.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은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타격 지점도 '도발 원점'이 아니라 'DMZ 내 북쪽 지역'이었다. 이에 대해 군은 "북한군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도 강력한 응징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응징 시늉만 냈다는 소리로 들린다.
물론 확전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국지적 충돌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키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전면전은 우리가 잃을 게 많다는 점에서도 피하는 게 이득이다. 북한의 국가 기능이 와해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다면 전쟁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출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계산'이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는 회피 심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김대중정부의 '햇볕'이 길을 트고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가 뒤따른, '만날 얻어터지는 남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2차 대전 직전 영국과 프랑스의 유화정책 실패는 진부하지만 꼭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유화정책은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는 '전쟁 공포증'의 산물이었다. 지금 한반도에 드리워진 숨 막히는 긴장은 우리에게 이러한 자문(自問)을 요구한다. '과연 우리는 전쟁할 의지가 있는가?'
"국가의 안전, 동포의 생명과 자유가 걸린 문제에서,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오면, 그런 확신이 있을 때는, 무력을 사용하는 일을 피하면 안 된다. 그것은 정당하고 절실한 문제다.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는, 싸워야 한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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