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후계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이맹희'이건희 형제. 이맹희(84) CJ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별세하면서 형제간 화해의 손길은 영영 만날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84) CJ그룹 명예회장은 이건희(73) 삼성그룹 회장의 맏형이자 이재현(55) CJ그룹 회장의 부친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이건희 회장은 형과 작별 인사도 못한 채 형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보내야 했다. 형제 사이에는 화해할 일이 남아 있었다. 2012년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천억원대의 상속 소송을 벌였다. 아버지의 유산을 돌려달라는 형제간 싸움이었고, 두 형제는 끝내 직접 화해하지 못했다.
삼성가와 CJ의 화해는 3세 경영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몫으로 남게 됐다.
◆범삼성가 고인 마지막 길엔 명복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이맹희 명예회장의 빈소는 비교적 차분했다. 범삼성가 사람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장례 첫날인 17일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70) 리움미술관 관장과 딸 이부진(45) 호텔신라 사장, 이명희(72)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47)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이날 저녁에는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장례식장을 찾아 약 20분간 머물다가 자리를 떴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큰아버지다.
조카인 이재용 부회장의 조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뭘까.
이재용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명예회장은 형제지간이지만 둘 사이의 갈등은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그룹 역사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삼성가에서 '어른'이었다. 그는 한때 장남으로서 후계 수업을 차근차근 밟았다.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부사장, 중앙일보 부사장 등 초기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병철 창업주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였다.
◆비운의 황태자로 전락한 이맹희
삼성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보였던 이맹희 명예회장은 1966년 운명을 가른 사건을 맞는다. 그해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졌다.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 원료를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로 위장해 수입한 사건이다. 관세율이 높았던 1960년대에는 밀수를 통해 엄청난 부당 이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비료가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이병철 창업주는 회장에서 물러났고, 맏아들인 이맹희 명예회장이 삼성호를 이끌게 됐다.
황태자로서 이맹희 명예회장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이병철 창업주가 삼성그룹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인 1969년 '청와대 투서 사건'이 터졌다. 부친의 탈세와 비리 내용을 소상히 적은 투서가 청와대에 올라왔고, 그 투서 작성자로 이맹희 명예회장이 지목됐다. 그는 평생을 억울해했다. 하지만 이병철-이맹희 부자 사이가 틀어진 데는 이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197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그룹 총수 자리를 내주고 만다.
뒤틀린 형제들의 우애는 언론에도 종종 공개됐다. 지난 2012년 이건희 회장은 형을 '이맹희 씨'라고 지칭하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형을 지칭해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사람, 나를 포함해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했던 사람"이라며 청와대 투서 사건의 배후가 이맹희 명예회장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형제간 상속 소송, 이건희 압승
이건희 회장이 형에게 날 선 비판을 쏟아낸 것은 소송 때문이었다. 지난 2012년 이맹희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 유산을 내놔라"라며 소송을 걸었다. 1990년대에 이맹희'이건희 등 자녀들의 유산 분배는 다 끝났으나 뒤늦게 알려진 유산이 따로 있었다. 이병철 창업주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보유했던 삼성전자'삼성생명 '차명 주식'이었다. 2007년 삼성 법무팀 소속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통해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관련 주식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이맹희-이건희 형제간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세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맹희 명예회장이 7천억원대의 상속재산 분할 청구소송을 걸었다. 아버지의 유산이니 100% 이건희 회장 몫이 아니라며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법정은 이맹희 명예회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1'2심에서 패했고, 지난해 2월 상고를 포기하면서 상속 소송은 끝났다.
항소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이맹희 명예회장은 재판부에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제출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취지는 화해였지만 내용을 보면 여전히 동생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 있었다. 그는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것을 방해하고, 삼성이 거래하던 대한통운 물량을 빼는가 하면 재현이(CJ그룹 회장'이맹희의 장남)를 미행하고,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창업 3대째는 어떤 관계로 갈까
이 명예회장의 별세로 형제간 직접 화해는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지난 14일 이 명예회장은 중국에서 숨을 거뒀다. 2012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했지만 암이 재발했고,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해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병상에 누워 있다. 이로써 삼성가 2세대의 화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삼성과 CJ의 뿌리는 하나다. 현재 CJ그룹 회장은 이맹희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씨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이병철 창업주의 손자들이 CJ와 삼성을 이끄는 '3세대 체제'가 굳어졌다.
아버지 세대가 이루지 못한 화합을 3세 경영인들이 이뤄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갈등과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경제계의 시각이다.
두 그룹 모두 지배구조와 계열분리가 확연해 서로 다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갈등의 당사자였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3세 경영인들은 감정적인 섭섭함은 있을지 몰라도 양측의 분쟁과 갈등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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