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 5일 근무제가 월 8일 휴일인가?

입력 2015-08-18 01:00:00

반년 가까이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내게, "하필이면 왜 그 일을 선택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미화원이라는 직업이 자랑일 것까지야 없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몇몇 지인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음이라 치부하는 눈치다. 그런 사람들에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한갓 틀에 박힌 표현에 불과하다.

백화점 야간 미화원으로 일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렇더라도 일일이 설명하기 번거로워서 '돈 벌려고 한다'는 가장 진실에 근접한 답을 내놓곤 한다. 사실 실용적인 자격증 하나 따놓지 못한 50대 아줌마가 대도시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거리가 주방의 허드렛일이나 각종 청소일 외에 달리 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환경미화원은 블루칼라(육체노동자)에 속한다. 블루칼라란 근육 활동이 필요한 작업에 종사하거나 자신의 몸이 유일한 도구이자 재산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작가로서 심히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육체노동자가 되고 나서야 '손발이 닳도록' 혹은 '뼈가 빠지게'라는 표현들을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영업이 끝나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1대도 돌아가지 않는 백화점 내부의 온도는 각종 전열기구가 뿜어내는 열기로 찜통을 방불케 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하루를 극기 훈련하는 심정으로 버텨낼 정도였다. 삶이 그야말로 고통스럽다는 걸 온몸으로 겪는 과정이었다.

최근 잠자고 있는 아들을 살해한 60대 청소부에 관한 기사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죽은 아들은 사법시험에 연거푸 낙방한 터였다. 그런 끔찍한 일이 없어야 마땅했지만, 환경미화원을 하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땀과 오물로 뒤범벅되어 퇴근했는데, 도무지 열심을 보이지 않는 자식이 눈앞에 있다면 누군들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나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니 순전히 내 오해였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부인 아버지는 화가 난 게 아니라 절망한 거였다. 어쩌면 무능한 아비의 삶을 반복할지도 모를 아들의 삶을 그는 자기 손으로 끝장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가난한 청소부는 결국 아들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삶을 살해하고 만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빈부의 격차야말로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라는 그의 배금주의(拜金主義)는 "사람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질투하고, 100배 많으면 부러워하며, 1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고, 1만 배 많으면 그의 노예가 된다"는 인간 이해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돈으로 인한 차별을 날카롭게 파헤친 그의 말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전체주의의 기원'에서)라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주 5일 근무제'에도 딴지를 걸어본다. 법정 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한정하는 주 5일 근무제가 육체노동자에게는 이상한 제도가 되고 있다. 적어도 백화점 환경미화원에게는 주 5일 근무제가 아닌 1개월 휴일 8일로 변칙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8월인 지금까지, 2월을 제외하고 모조리 4주가 아니라 5주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백화점 환경미화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휴일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이 휴일들은 수당 한 푼 붙지 않은 채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곳뿐 아니라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채용하는 대다수 용역업체들의 실상이기도 하다.

'임시 공휴일'은 고사하고라도,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라도 찾고 싶다. '누구라도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최소한의 윤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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