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통장

입력 2015-08-10 01:00:00

통장을 갖고 싶었다. 주위에 있는 지인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아서였다. 그동안 뭘 하느라고 남들이 다 가진 걸 나만 가지지 못했을까. 은행에 가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은행에서 만들 수 있는 그런 통장이 아니다. 가진 자들의 말을 빌리면,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면 흐뭇하다 하고 뿌듯하다 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것은 봉사를 통해서만 손에 쥘 수 있는 통장이다. 6, 7년 전에 만든 친구가 있는가 하면, 지난해 만든 친구도 있다. 오래전부터 봉사문화가 우리 생활 속에 정착되어 온 것 같다. 부럽다. 나도 그 통장을 하나 갖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복지관에서 하는 점심 배식 봉사나 차량을 이용한 도시락 배달은 근무하는 곳이 매달 요일이 바뀌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이'미용 봉사는 기술이 없어 할 수 없고, 목욕 봉사는 허리가 신통치 않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쉽고 편한 것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봉사하려고 생각을 굳힌 지 한 달가량이 지났을까, 지인을 통해 봉사단체를 소개받았다. 이 단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다양화되는 학교폭력, 사회범죄, 교통사고 예방 등 사회 기초질서를 확립하는 데 한몫하기 위해 여성들로 구성됐다.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봉사를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아 좋다. 첫 활동으로 안전한 등교 및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에 참여했다. 1시간 정도 봉사를 했다. 그런데 이 봉사 시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봉사 기록을 발견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봉사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경험은 내 삶에 자양분이 될 것 같아 많이 하고자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무조건 하고 봤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은 참여하지 못했다. 그게 후회가 되어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자 열 일을 제쳐놓고 참여했다. 그게 봉사기록으로 남았나 보다.

몇 년 전부터 학교에 가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니?"라고 해서 했고, 잔잔한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그저께는 방학을 맞아 재능기부를 하러 갔던 한 학교의 신희와 채린이가 내가 근무하는 대구문학관으로 찾아왔다. 불볕더위로 외출하기 꺼려지는 대낮에 벌겋게 익은 얼굴로 찾아와준 그들로 인해 많이도 행복했다. 다들 이런 맛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말하기를 자원봉사는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희망 발전소'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지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뿐만 아니라 올해 열린 대구경북 세계물포럼 역시 뒤에서 묵묵히 봉사한 시민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까? 통장을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입한 봉사단체지만, 통장에 쌓이는 포인트에 연연해하지 않고 힘이 닿는 한 손길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이나 기쁨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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