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십자군·히틀러…'불관용' 아래 자행된 대학살…『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

입력 2015-08-08 01:00:00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 근대 유럽의 종교 갈등과 관용 실천

벤자민 J. 카플란 지음/김응종 옮김/푸른역사 펴냄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IS가 자행하는 반 문명적인 파괴와 학살은 우리를 경악케한다. 한 IS 소녀는 "나의 목표는 불신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증오심과 섬뜩함은 우리가 기차역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불신 지옥' 구호와 차원이 달라 보인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관용적인 종교라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불관용' 종교로 이슬람의 돌변은 바라보는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종교적 차원에서 IS의 선배가 이었다. 바로 중세 그리스도교 십자군이다. 십자군은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줄이는 것"이라는 가르침 아래 서아시아의 이슬람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그들은 그것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당화했으나,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일침이다. 근대 종교개혁 이후에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웠다. 30년 전쟁으로 독일 인구는 반 토막이 났다.

근본주의적 불관용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20세기 스탈린의 소련, 히틀러의 독일, 마오쩌둥의 중국 등지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대학살 역시 근본적으로는 불관용이 일으킨 범죄였다. 그것이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독일에서는 민족혁명으로,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반 문명적인 폭력에 불과했다. 저자는 우리가 찬양하는 프랑스 대혁명 또한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라는 구호 아래 제노사이드에 버금가는 동족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이슬람이 관용적이었고 그리스도교가 불관용적이었으나, 지금은 이슬람이 불관용적이고 그리스도교가 관용적이다. 그러나 이 두 거대 종교는 모두 '유일 진리'를 자처하는 독선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불관용'이란 DNA를 지니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그리스도교는 점잖지만 과거의 그 불관용이 화산처럼 폭발한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는 게 저자의 경고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은 관용의 '사상'이 아니라 관용의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관용'에 대한 연구가 주로 위대한 사상가들과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인 국가주의 정치가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실천'으로 시선을 옮긴 만큼 관용 사상가들이 아니라 관용이라는 사상을 알지도 못하던 보통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들 보통 사람들은 관용사상과는 무관하게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서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살아갔다. 이와 관련된 '공유교회' '비밀교회' '동등권 체제' 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서양에서 관용의 역사는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서양의 사례를 이슬람 세계의 밀레트 제도와 비교해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밀레트 제도란,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부여한 제도이다. 그런데 밀레트 제도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다. 따라서 밀레트 제도 아래에서 여러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지만, 한 공동체 안에서 '개인'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관용이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문명화라든가 구원이라든가 하는 명분으로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사는 것이다. 지나친 관심을 보였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보다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저자 벤자민 카플란은 강조한다.

"서로 지나치게 사랑할 필요가 없다. 서로 죽이지 않기 위해서."

어느 사회나 갈등을 겪고 해결하면서 발전하지만, 우리 사회는 갈등 해결 능력이 약하다. 수직적인 위계사회에서 수평적인 민주사회로 급속히 이행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법, 규범, 공중도덕, 시민의식 등이 확립되지 못한 탓이다. '관용'은 그것의 의미가 '용인'이건 '타자의 권리 존중'이건 모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까 싶다. 592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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