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드라마 임금 미지급 문제

입력 2015-08-07 01:00:00

"출연료 언제 주나요" 조·단역 배우들 속앓이만…

◆ '일리있는 사랑' 출연료 미지급 사태, 방송계 흔한 일

방송계에서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드라마 임금 미지급에 관련된 사건이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드라마는 올해 2월에 방송을 마친 tvN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이다. 엄태웅과 이시영 등이 출연한 멜로드라마로 방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진 못했어도 잔잔하게 호평을 끌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종영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조'단역 배우 중에는 아직 출연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작'으로 찍혔다. 수시로 드러나는 드라마 임금 미지급 사태 문제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CJ E&M 계열 tvN에서 방영된 '일리있는 사랑'은 외주제작사 케이팍스가 만든 드라마다. 당시 주연급 배우들은 CJ 측과 직접, 조연급 배우들은 제작사 케이팍스와 출연 계약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현재 케이팍스와 계약한 조'단역 배우들의 상당수가 임금을 지급받지 못해 문제가 됐다. 당사자 케이팍스가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CJ 측은 "케이팍스 측에 제작비 전액의 지급을 완료했으며 출연료 미지급 건에 대해 재차 문제 해결을 종용하고 있는 상태"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당 드라마와 관련해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는 설명으로 해석된다.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사실 방송계에 이런 일은 흔하다. 앞서 지난달 17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도 방송계에 만연한 임금체불 및 출연료 미지급 실태를 보도했다. 이날 'PD수첩'은 지난 4월 한 차례 공개된 방송사 및 제작사별 드라마 미지급 출연료 현황을 재차 알렸다.

올해 7월까지 집계된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액수는 총 26억2천만원에 달한다. 4월 발표된 액수와 큰 변동이 없다. SBS의 2012년작 '신의'(신의 문화산업전문회사 제작)가 약 6억4천만원 상당의 미지급액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2011년에 발표된 '더 뮤지컬'(필름북 제작)이 약 2억8천만원의 미지급액을 가지고 있다.

KBS는 특히 심각하다. 2009년에 방송된 KBS 2TV '공주가 돌아왔다'(단디 미디어 제작)와 2010년작 '국가가 부른다'(JH 프로덕션 제작)를 합해 약 2억5천만원, 2010년에 전파를 탄 '도망자'(도망자 에스원 제작)가 약 4억5천만원, 2011년에 방송된 '프레지던트'(필름이지 제작)도 약 5억5천만원, 지난해 방영된 '감격시대'(레이엔모 제작)도 약 1억3천만원의 미지급액을 가지고 있다. 이미 종영된 지 3~5년이 지났는데도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사실상 지급능력을 상실했다는 말과 같다.

지난 3월에도 MBC드라마넷의 '태양의 도시'가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이 드라마에서 연기하고 있는 우리 조합원의 출연료 약 2억원 정도가 미지급된 상태다. 1회부터 15회가 방영되는 동안 연기자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임금을 못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제작사 이로크리에이션은 미지급 임금 문제 해결에 의욕을 보이기보다 남은 촬영을 마치기 위해 스태프들을 교체하고, 또 배우들의 출연을 최소화하며 완주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MBC드라마넷 측에서도 자신들은 방영권만 샀고 이에 대한 제작비 분담금을 이미 지불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20부작을 목표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16회를 끝으로 조기종영했으며, 심지어 마지막회가 불방됐다가 뒤늦게 전파를 타기도 했다. 미지급 임금 문제 역시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제작사는 책임 회피, 피해는 출연자와 스태프들에 고스란히

매번 드라마 임금 미지급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형성되는 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사건 전개 방향도 흡사하다. 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출연자나 스태프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 봉기하고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사 측은 "우린 이미 제작사에 돈을 다 줬다"며 뒷짐을 진다. 그리고 제작사에서는 체불된 금액을 두고 "차후 벌어서 갚겠다"는 약속을 하며 합의를 시도한다. 해당 콘텐츠의 부가판권 판매 등으로 인해, 또는 타 콘텐츠로 인해 수익이 발생할 경우 체불된 임금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구두 약속이 대부분이다. 그리고는 "일단 드라마를 끝내는 데 최선을 다하자"며 현장 인력들을 다그친다.

이렇게 해도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때에 따라 방송사가 직접 해결에 나서기도 한다. 계약 사항별로 달라지지만 방송사 측이 미지급 출연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서약하는 경우가 있고, 또는 책임을 지고 제작사를 종용하겠다고 재차 상대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방송사는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대부분이다. 임금 계약의 주체가 된 경우가 아니라면 전반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다. 특히나 최근에는 드라마 임금 미지급 사태가 자주 발생해 방송사 측에서도 아예 방영권만 구입하는 등의 편법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흔히 말하는 표준계약서상에는 '방송사 자체제작 및 외주제작물을 막론하고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방송사가 직접 출연자에게 지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이 또한 권고에 불과해 법적으로 강제성을 띠지는 못한다. 다만 이 내용으로 인해 차후 방송사가 떠안게 될 부담이 발생하는 건 사실. 그래서 방송사들은 방영권만 사서 내보내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제작비 전체를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방영권만 구매해 관여하는 비중을 최소화하면 향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우린 이미 할 일을 다 했다'며 좀 더 편하게 발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관계를 들여다보면 엄연히 방송사는 의무를 다한 게 분명하니 무작정 '갑질'을 했다고 몰아세우기도 힘들다. 물론 도의적 책임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매번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히 방송사와 제작사, 또 스태프-출연자들을 둘러싼 '갑을 관계'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기형적인 형태의 드라마 외주제작시스템이 가져온 폐해다. 방송 외주정책이 최초 시행된 게 1991년, 그리고 올해로 24년째다. 그동안 각 방송사들의 자체제작 드라마의 비율은 현저히 줄었다. 방송법상 규정된 외주제작 비율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금전문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방송사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제작비에 한계가 있고 스타의 몸값은 날로 치솟는다. 그럼에도 스타를 데려오지 않으면 제작에 들어가는 자체도 쉽지가 않다. 결국 방송사에서는 현행 방송법상 협찬이 정당화되는 외주제작사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외주제작사가 PPL 등 협찬으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주면 그 여윳돈으로 스타 출연료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죽이 잘 맞아떨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외주제작사는 방송사가 넘겨주는 턱없이 적은 제작비를 충당하고 또 수익을 남기기 위해 협찬이나 해외 판매 등 부가적인 수익에 치중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선 주목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타 작가 및 출연자를 섭외할 테고 그렇다면 이들을 위해 제작비의 상당 부분 금액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 우선 완성시켜 화제작으로 부각시킨 후 부가수익을 남겨야 '장사'가 되기에 일단은 '만만한' 조'단역급 출연자들과 조수급 스태프들의 임금 지불을 미루게 된다.

외주제작사의 '능력'보다도 해당 제작사를 이끌고 있는 '선배'에 대한 전관예우 차원에서 드라마를 편성해 주는 방송사의 악습도 문제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임금 미지급 사태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방송법 개정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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