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유명 소설가 신경숙 씨가 표절 의혹으로 대망신을 당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없이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한 데 대해 국민적인 분노까지 사고 있다. 문제가 된 대목을 한번 살펴보자.
신경숙 작가의 1996년 작 '전설'이라는 작품에는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1983년에 출간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라는 작품에는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표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봐도 "대충 베꼈는데, 몇몇 단어와 문장의 어미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표절 대목은 신경숙을 옹호하려던 세력마저 꼼짝 못하게 만들었고, 여론은 그에게 앞으로 글을 쓰지 말라는 '절필'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태는 작가가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면서, 글쓰기의 또 다른 전문집단인 '기자 사회'를 되돌아봤다. 표절 논란이 된 위 대목만 봤을 때, 기자들 사이에선 '우라까이'(언론계 은어'남의 글을 베끼지만 표현을 조금 다르게 쓰는 기사) 정도에 해당될 문장들이다. 기자들 세계에선 초년병인 사회부 때부터 우라까이에 익숙하다. 특종이나 단독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한 언론사 기사가 반향이 커지면, 타 언론사 기자들은 물먹고(낙종) 난 후 첫 기사를 보고 그 내용을 우라까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각 언론사의 기사들이 차별화될 리가 없다. 이런 환경은 '독고다이'(언론계 은어'홀로 대적한다는 뜻) 기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다. 특종할 확률은 높겠지만 반대로 낙종의 위험도 무릅써야 하기 때문에 방송사나 신문사라는 조직 속에서 '독고다이 기자'는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감히 말하건대, 대다수 기자들은 '짜깁기'의 대가들이다. 'Ctrl C+Ctrl V'라는 손쉬운 컴퓨터 자판 무기에 굴복해 직접 취재하지도 않은 타 언론이나 블로그, 카페, 논문, 보고서 등에서 여러 개의 글을 끌어다 주제를 잡아서 자기 기사인 양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이메일)을 달아 버젓이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내보낸다. 솔직히 이런 부끄러운 경험을 한 기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신경숙 표절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동종의 직업군에 있는 기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날린다. "기자 사회도 최소한의 자기반성과 양심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연예 등 현장을 누비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취재방식으로 접근해 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생산하자. 그것이 바로 '창조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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