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고갈 상태에 직면한 문화예술진흥기금 대신에,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을 내년부터 지역발전특별회계(이하 지특회계)로 지원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 때문이다. 얼핏 문화예술진흥기금이든, 지특회계든 예산만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또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이 지특회계로 지원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고, 사업의 관리주체가 문화예술위원회보다는 중앙정부인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문화예술 정책의 분권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이런 주장의 배경이 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역할을 했으며, 왜 기금 고갈의 위기에 처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은 순수예술 분야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오랫동안 기능했고, 이 법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은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2003년 공연장과 영화관, 문화재 등의 입장료에 일정 비율을 부가해 기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기존 방식의 기금모금이 중단된 이후, 적립금 이자수입과 원금을 헐어 예술계를 지원해 오던 것이 이제 한계를 맞아 사업예산 편성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여기서 헌재의 위헌판결로 문화예술진흥기금이 고갈될 것이 뻔한데도 정부가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역 분권 정책에 의해 중앙집권적인 문화예술 지원체계가 조금씩 분권적 지원체계로 바뀌었고, 광역문화재단 설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지역문화 활성화와 지역문화예술의 분권화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이렇게 법적으로 보장받은 지역문화예술 분권화를 뒷받침할 '재원'에 관한 어떤 구체적인 조치도 뒤따르지 않았다.
결국 지역문화진흥법이 지역문화재단의 확실한 설립 및 운영의 근거법이 되었지만, 지역문화재단 재원의 중요한 영역인 '지역문화예술진흥사업' 예산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문화예술진흥기금에서 마련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받는 교부금이고, 이 기금이 고갈 상태인 것이 현 상황이다. 더욱이 문화예술진흥법이 특히 순수예술 분야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한 근거법 역할을 한 만큼,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순수예술분야' 예술인들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예산이 지특회계로 편성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지특회계는 그 특성상 지방자치단체장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에서 문화예술 분야가 경제나 다른 분야에 밀릴 수 있고,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도 대중적 상업적 성격이 강한 분야에 지원이 쏠릴 수도 있다. 단체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사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순수예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는 단체장이 있을 수 있지만, 선출직의 특성상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비록 '지특회계로 이전하더라도 편성지침 등을 통해 민간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유형을 그대로 유지시킨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는 균형발전특별법 제정 취지인 지자체 자율편성과 모순되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의 '기초예술분야' 기반이 붕괴될 우려를 배제하기 어렵다.
'복지 분권'이라는 허울 좋은 말에 속아 지방재정이 거덜난 경험을 거울삼아 '문화예술 분권'의 실체에 대해서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 대구'경북 예술인들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키워드는 '지역' '기초예술' '보호'육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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