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참패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일본 기동함대 지휘관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의 '표준 규칙' 준수였다. 당시 미국 해군은 일본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탐지하고 일본 함대 공격 진로 북서쪽에 항공모함 2척을 주축으로 한 함대를 매복시켜놓고 있었다. 이를 몰랐던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의 미군 육상기지를 공격한 뒤 2차 공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직전 미군 항모를 발견했다는 정찰기의 무전 보고가 들어왔다. 이는 미군 항모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날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했다. 당장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출격 대기 중인 함재기에 장착된 폭탄이 육상 공격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구모는 함정은 어뢰로 공격한다는 '표준 규칙'에 따라 육상공격용 폭탄을 어뢰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일본 항모는 어뢰와 폭탄이 어지럽게 널린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때 미군 급강하폭격기들이 갑자기 나타나 폭탄을 투하했다. 이 기습으로 일본 주력 항공모함 4척 중 카가(加賀), 소류(蒼龍), 아카기(赤城) 등 3척이 쌓아놓은 폭탄과 연료의 연쇄 폭발로 침몰했다. 미국 함대의 공격이 예상되는 급박한 상황임에도 규칙에 집착한, 말하자면 '경로 의존'(Path dependency)이 초래한 재앙이었다.
경로 의존이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산타페연구소의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임이 드러나도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금화의 테두리를 깎아내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화의 테두리에 새겨넣은 돌기가 금화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이 '정권심판론'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비공개 보고서를 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 때 여당 지지율은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는 반면 야당 지지율은 거꾸로 하락했다는 것이 근거다. 이는 박 정권에 대한 과도한 정치 공세가 야당에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새정치연합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선거 때마다 '정권심판론'을 내세웠으나 모두 패배했다. 정권심판론이란 경로 의존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신호인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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