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시대 변천에 따라 자꾸 진화를 거듭하는 것일까? 얼마 전에 '돌싱'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그냥 우스갯소리로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은어'인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보니 버젓이 '돌싱'이란 '돌아온 싱글의 줄임말로 이혼한 여성이나 남성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표기돼 있다. 언어란 사용빈도가 낮으면 차츰 사라지게 되고 빈도가 높으면 더 발전하게 돼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 국가 중 부동의 이혼율 1위 국가이다. 이혼을 해서 단순히 부부가 갈라서는 것만이 아니라 가정문제는 곧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가정은 하나의 작은 조직사회이다. 부모와 자식 간, 부부지간 형지지간 모두 서로 얽히고설켜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조직이다. 요즘이야 부모와 자녀, 4명의 가족이 대부분이지만 옛날에는 한 지붕 아래에서 8촌까지도 산다고 했으니 '가정'이란 조직은 어마어마했다. 거기에서 어릴 때부터 조직사회에 적응해온 우리네 부모들은 멀리 고향을 떠나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부부간에서도 서로 참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얼마 전 아버지 제삿날 친정어머니는 유언인 듯 협박인 듯(?) 말씀하셨다. 그 내용은 당신은 젊은 날 무능한 아빠와 살기 싫어서 천 리나 만 리나 도망가고 싶었는데 우리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는 것이다. 막내가 농담 삼아 우리한테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실 건데 도망가지 않으신 이유를 넌지시 물었더니 친정어머니는 구구절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 주셨다.
첫째는 새까만 눈을 말똥말똥 거리며 '엄마'라고 부르며 치대는 우리를 버릴 수 없었다는 것.
둘째는 당신 팔자 고치겠다고 저 어린것을 버리면 어디 가서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늘이 무서웠다는 것.
셋째는 외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발목을 잡았다는 것. 호랑이 피하다가 뒷골 여우를 만난다는 것이다. 즉 더 나쁜 운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등의 많은 이유들이 도망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모질게 돌아서지 않는 다음에야 자식을 두고 도망가기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세상 눈 깜짝할 새니까 살다 보면 다 용서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돌싱에게 이런 이야기들이 먹힐까? 저마다의 사정이 다 있겠지만 서로 참고 노력하면서 성경 말씀대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이해하며 옛날 어머니처럼 이혼할 수 없는 이유를 손꼽아 보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한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상대방이 협조하지 않아 돌싱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가슴 아파했을 줄로 안다. 다만 '가정'이라는 작은 조직을 이끌지 못해, 또는 그 조직에 버티며 적응을 하지 못해 돌싱으로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돌싱'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사어(死語)가 되기를 바란다. 가정이 곧 사회이고 행복한 사회는 행복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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