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들려주는 한 단락 인문학] 살아있네!-마당을 나온 암탉

입력 2015-07-27 01:00:00

허현 대구 천내초등학교 교사
허현 대구 천내초등학교 교사

지금도 살아있는 잎싹이에게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 나무의 그 잎사귀처럼 원가를 하고 싶었다." 이 말을 내가 계속 되뇌고 있어. 잎싹아, 궁금하니?

잎싹아, 나는 너를 여러 번 만나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너를 보니 '너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 하게 돼. 다른 암탉들과 달리 '잎싹'이라는 이름도 짓고, 이름을 가진 다음부터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왜 잎싹은 닭장에 있고, 어떤 암탉은 마당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 생명을 기르는지 궁금해한 것도 이름을 짓고 나서부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생명을 키우고 싶어하던 마음도 그전보다 더 간절한 것처럼 보였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고,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은 이름답게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먹을 것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없는 다른 암탉들, 닭장 속 암탉들은 자기가 낳은 알이 매일 사라지는 데도 아무 반응 없이 수동적 순종의 삶을 살았지. 마당 암탉은 수탉의 비호 아래 마당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기르지만, 잎싹과 초록머리가 마당에 들어와서 자신의 기득권이 줄어들거나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보여. 또 자신의 아기(병아리)가 사냥꾼에게 잡혀갈 때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만 볼 수 있었지.

잎싹이 너의 모습은 이들과는 대조적이었어. 사냥꾼에게 네 아이(초록머리)가 잡혀가지 않도록 용감하게 저항했지. 마당 밖에서 살기에 잘 먹지도 못해 살이 빠지지만, 오히려 더 튼튼해져 가는 잎싹이 너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어.

처음에는 네가 죽는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이 교과 수업 시간을 마치고 오는 줄도 모르고, 너무 눈물이 줄줄 흘렀어. 이번에 너를 만났을 때, 네가 보았던 아카시아 잎사귀를 생각했어. 그것은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요,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맞니? 초록머리를 양육하고 보다 더 넓은 세계로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 한 생명을 기르는 것이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어떤 것에 도달하거나 무엇을 성취하면 그것에 만족하고 머무는데, 너는 날기를 꿈꾸며 계속 자라 가더구나. 마치 잎싹이 네가 처음에 있던 닭장처럼, 네 날지 못하는 육신이 네 생명을 가두어 둔 감옥처럼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어. 나비가 날아가기 위해 번데기의 허물을 벗어야 하는 것처럼, 그 육신은 더 이상은 계속 성장하는 너를 담아둘 수 없는 것처럼 보였어.

맞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죽은 것은 그 어떤 존재든지 질문(생각, 저항 등)하거나 자라갈 수 없지. 뭔가를 할 수도 없어. 잎싹아, 나에게도 다시 살아있음을 느껴 보라고 말해 주어서 고마워.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 자라가는 네 모습을 보게 될지 무척 설레는구나.

허현 대구 천내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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