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한국형 뱀파이어, 지상파까지 진출

입력 2015-07-21 05:00:00

안방까지 온 한국형 뱀파이어…지상파 TV의 처절한 몸부림

#막장 드라마 탈피 노력 가상

#뱀파이어 흥행 성적은 별로

#시청률 조금씩 올라가 다행

#"드라마 시장은 결코 안 뺏겨"

#지상파 방송의 과감한 시도

#서양 귀신들 안방行 잇따라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타국의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이상할 게 없다. 대중문화계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문화권에서나 생산되던 소재의 콘텐츠가 이젠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서구 문화권에서 넘어온 '뱀파이어'라는 캐릭터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만들어지던 뱀파이어 소재의 콘텐츠가 지금 한국에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특히 올해는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밤을 걷는 선비'까지 세 편의 드라마가 이미 지상파에 편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상파,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 파격 편성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가 지상파에 편성된다는 소식은 지난 상반기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뉴스 중 하나였다. 앞서 비지상파 OCN이 '국내 최초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를 표방한 '뱀파이어 검사'를 시즌제로 내놓고 성과를 거둔 예를 제외하면 유사 소재 드라마가 제작된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30%대 중반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린 빅히트작 '시크릿 가든'(2010) 이후 판타지뿐 아니라 지극히 장르적 특색이 강한 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상파가 '서양 귀신'까지 전면에 내세우는 강수를 둘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니아 층을 공략할 수 있는 비지상파와 달리 폭넓은 연령대에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던 지상파의 편성전략 중 하나가 뱀파이어라니 놀라울 수밖에. 최근 예능 부문에서 진부한 콘텐츠를 내놓으며 비지상파에 밀리고 있는 지상파가 '드라마 시장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과감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웹툰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웹툰의 드라마화가 성행하고 있는 업계 분위기 역시 '한국형 뱀파이어의 지상파 입성'을 부추겼다. 뱀파이어물은 처음부터 드라마화를 목적으로 시놉시스 및 각본작업을 했다면 결코 편성표에 타이틀을 올릴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한 차례 가능성을 인정받은 웹툰의 드라마화 작업이라 방송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웹툰과 웹소설 등 대중과의 만남에 있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콘텐츠 시장에서 뱀파이어를 부각시킨 작품이 차례로 인기를 끌며 소재의 대중성을 입증했다. 이미 해외에서 들어온 각종 콘텐츠로 인해 국내 대중도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익숙해져 있던 상황. 지상파 관계자들 역시 '곳곳에서 국내판 뱀파이어가 성행하니 대중도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흡혈귀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게 분명하다.

스크린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형 뱀파이어가 존재했다. 2006년 김수로 주연의 '흡혈형사 나도열'이 한국형 뱀파이어를 국내 시장에 정착시키려 했던 대표적인 영화다. 하지만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오는 등 특색 없는 전략으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작 '박쥐'도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국내 영화계를 흔들었지만 뱀파이어라는 소재의 유행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오히려 2008년부터 열풍을 몰고 온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 할리우드의 콘텐츠가 국내 시장에 자극을 줬고 그 결과물이 웹툰 등을 통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거쳐 '서양 귀신'의 안방극장 행이 진행됐다.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 절반의 성공

일단, 시청자 입장에서는 한층 더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됐으니 그다지 나쁠 게 없다. 한국 시장에 서양 귀신까지 데려와야겠냐고 반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따지기에 이미 뱀파이어는 우리 대중에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게다가 시청률 올리겠다고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막장 드라마'를 내놓고 있는 지상파가 트렌드를 따라잡겠다고 나섰으니 그 노력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하지만, 7월 중순 현재까지 지상파에서 내놓은 소재 드라마가 거둬들인 성적이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먼저 국내 지상파 사상 최초로 뱀파이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KBS2 TV 월화극 '블러드'의 예를 살펴보자. 이 드라마는 뱀파이어가 된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의학 드라마에 뱀파이어라는 캐릭터를 적용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르물을 만들어보려 했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전파를 탄 이 드라마는 평균 5%대를 오가는 안타까운 시청률로 종영했다. 채널 수가 늘어 시청률 평균치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지상파의 주중 미니시리즈가 5%대에 겨우 턱걸이를 한다는 건 동시간대 평균에도 못 미쳤다는 말이다.

게다가 '블러드'는 방영 중반에 이를 때까지 주연 안재현과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히트작 '굿 닥터'의 제작진이 투입돼 기대감을 높였지만 전반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는 평가를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블러드'로 지상파 최초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를 시도한 KBS는 또 한 편의 유사 소재 작품을 내놓으며 '굳히기'를 시도했다. 5월부터 현재까지 방송되고 있는 KBS2 TV '오렌지 마말레이드'다. 온라인 상에서 큰 인기를 얻은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여진구와 설현 등 청춘 스타들이 캐스팅돼 열연하고 있다. 시청률로 따져보면 '오렌지 마말레이드' 역시 아쉽다. 이 드라마는 조선시대와 현대를 오가며 펼쳐지는 뱀파이어 소녀와 평범한 소년의 로맨스를 그렸다. 4%대까지 상승하는가 싶더니 이후 줄곧 3%대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금요일 심야, 기존에 없던 드라마 방송 시간대를 개척했다는 핸디캡을 적용하더라도 서러운 기록이다. 아역스타 여진구를 비롯해 걸그룹 AOA의 인기 멤버 설현 등 젊은층에 어필할 만한 인물들을 캐스팅해 화제성을 높였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주연으로 나선 설현의 연기력 논란에 발목을 잡히는가 하면, 원작과 다른 전개로 재미를 주려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감싸 안고 가야 할 기존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잘 드러난다는 사실. 무게감 있는 배우가 없고 스토리가 산만하긴 해도 뱀파이어를 사회에 공존하는 소수로 분류하고 일관성 있게 주제의식을 살려내 호평도 얻고 있는 상태다. 풋풋한 10대들의 로맨스와 뱀파이어 캐릭터의 만남 역시 국내 드라마계에서 처음으로 성사된 시도다.

이달 초부터 방송되고 있는 MBC TV 수목극 '밤을 걷는 선비'도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와 마찬가지로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됐으며 조선시대 선비를 뱀파이어로 설정해 흥미를 자아낸다. 왕권까지 쥐락펴락하는 악한 뱀파이어와 뱀파이어가 된 후에도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은 '수호귀'의 대결을 그린다.

그나마 '밤을 걷는 선비'의 시청률은 앞서 방송된 두 편의 뱀파이어 소재 드라마에 비해 양호하다. 평균 7%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개가 빨라지면서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선과 악의 뚜렷한 대비, 또 '남장 여자'라는 하이틴 드라마에서 흔했던 설정 등 뱀파이어를 내세우되 '익숙함'을 기반으로 삼아 '낯설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이 가질 만한 부담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이준기 등 웹툰의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은 캐스팅을 성사시켜 원작 팬들의 지지까지 끌어내고 있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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