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청춘은 여행이다

입력 2015-07-20 05:00:00

1950년 경주 출생. 대구고·성균관대 법학과 졸.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1950년 경주 출생. 대구고·성균관대 법학과 졸.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청춘들의 쉽지 않은 현실이 아프지만

꿈을 향한 도전정신만큼은 잃지 않길

확실한 나의 꿈을 먼저 찾아 떠나보자

여행과도 같은 청춘, 더 나아가야 한다

평소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얼마 전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은 참 재미있게 봤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고 있던 배낭여행을 나이 지긋한 '할배'들이 떠난다는 신선한 발상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노년배우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삶에 대한 태도였다. 여든 살이 넘은 맏형 이순재 씨는 육십 년이 넘는 세월을 연기만 하고 살았던 천상 배우다. 하지만 아직도 연기를 더 잘하고 싶고, 더 오래도록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10년, 20년 뒤에도 연기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몇십 년 전, 훤칠한 외모로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던 청춘스타는 이제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버린 노년배우가 되었지만, 여전히 배우의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은 그 화려했던 시절 못지않게 멋지고 행복해 보인다.

은행장 시절, 나는 일부러 신입행원들과의 자리를 많이 마련했었다. 앞으로 은행을 이끌고 나아갈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때마다 옆에 앉은 신입행원들에게 꼭 물어봤던 말이 있다. "우리 행원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몇몇 친구들은 호기롭게 "은행장입니다!"를 외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친구들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얼버무린 적이 많다. 은행장과 함께하는 자리가 조심스러워서였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꿈을 확고하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다소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과학자, 대통령이 되겠다며 당당하게 대답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의 청춘들이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꿈'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꿈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이 시대의 청춘에겐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도, 취직을 위해 또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 인생과 꿈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사회의 청춘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글을 잘 쓰는 작가보다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사는 이가 더 아름답고,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이가 더 행복하다. 셰익스피어는 "고통을 받을 때 아파하기보다는 그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생을 잘 풀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쉽지 않은 현실이 아프지만 그래도 꿈을 향한 도전정신만큼은 잃지 않길 바란다.

청춘은 여행과도 같다. 지나고 나면 한층 성장해 있고, 다른 이에게 들려줄 자신만의 이야기가 생기며, 새롭고, 다정하며, 겁이 나고 낯설지만, 행복하다. 새로운 가능성도 내다볼 수 있다. 그렇게 여행은 경험으로 배움을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무작정 뛰쳐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뒤 상황 보지 않고 '더 늦기 전에!'만을 말하며 뛰쳐나가는 것은 올바른 여행이 아니다.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도, 패기가 부족한 것도, 나약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약간의 준비물이 필요한 법이다.

청춘이 그렇다. 여행도 그러하듯이. 그러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한 나의 꿈을 먼저 찾아보길 권한다. 먼 훗날, 내 꿈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나에게는 최고의 시절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도 그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 바치던 청춘이 아름다웠고, 또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 아직도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꽃할배'들처럼.

이순우/전 우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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