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다고 예의없는 행동 비단 연예계만의 일일까?
#세상의 선배들에게 고합니다
#TV 제목처럼 "나를 돌아봐"
'동방예의지국'이란 표현을 내세우며 '예의'를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과거 중국이 자신들의 속국이라 생각했던 조선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칭찬하며 사용했던 말이다. 또는 투철한 유교사상으로 인해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조선을 본 외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간에 모욕적인 느낌이 강한 건 사실이다. 게다가 국제사회를 지향하는 21세기에 무작정 '윗사람에게 공손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강요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나 '존경받지 못하는 선배'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예의'는 아랫사람으로선 굴욕적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존경'과 '예의'를 강요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아이러니다. 대중문화계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연예계 원로 조영남과 김수미는 아예 공식 행사장의 기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수미 막말에 조영남 돌발 행동
방송계에서 널리 회자될 두 사람의 '역대급 사건'은 지난 13일 KBS 새 예능 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의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발생했다. 출연자들이 2인 1조로 팀을 이뤄 행동 패턴을 살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의 기획. 이경규가 조영남의 매니저를, 개그맨 박명수가 김수미의 매니저를 맡아 함께하며 일상을 곱씹어본다는 설정이다. 배우 최민수도 아이돌밴드의 보컬 이홍기의 매니저로 투입돼 눈길을 끌었다. 앞서 파일럿 형태로 전파를 탔다가 우여곡절 끝에 정규 편성이 결정된 만큼 출연진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제작발표회를 잔치로 여겨도 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김수미는 "첫회 시청률은 박명수에게 달렸다고 본다. 최민수 팀 역시 시청자가 기대할 거다. 하지만 조영남과 이경규 팀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전체 팀 중 시청률이 제일 떨어졌다. 경고도 많이 먹었다"고 자극적인 발언을 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이어 "본인이 하차 안 해도 계속 이런 식이면 KBS에서 하차시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경규는 그냥 가고 조영남 선배만"이라고 꼬집으며 조영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만약 출연자들 간에 친분이 두텁다면 오히려 현장 분위기를 달굴 만한 유머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또는 조영남이 여유로운 웃음으로 넘겼다면 '대인'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조영남은 김수미의 발언 후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면전에서 들어본 건 처음이다. 지금 사퇴하겠다. 수미 씨 얘기를 들으면 내가 이 프로그램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을 나가버렸다.
사회를 맡고 있던 조우종 아나운서와 파트너 이경규가 애써 웃으며 만류했지만 조영남은 완강했다. 이 과정에서 김수미는 "그만둬라"며 또 한 차례 조영남을 도발했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까지도 어안이 벙벙했다는 후문. 오히려 "제작진이 각본을 짜고 출연자들이 이에 따라 연기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나를 돌아봐'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에 맞게 이날 벌어진 일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조영남의 퇴장 이후 제작발표회는 황급히 마무리됐고 제작진 역시 황당해하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시간이 지난 뒤 제작진이 "계속된 설득 끝에 조영남이 하차 선언을 번복했다"고 알렸지만, 이날 보여준 행동에 대한 비난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연예계 선배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김수미에 대해서도 '말이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김수미의 독설은 조영남이 사라진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행사를 급히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홍기가 "열심히 해서 재미있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인사하자 "야, 너는 열심히 한다는 게 열심히 지게로 짐을 나른다는 거야? 좀 알아듣게 어떤 콘셉트로 하겠다는 건지 말을 해야지, 왜 저런 애를 데려왔어"라며 막말을 했다. 박명수가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고 하자 "무슨 시청이냐, 기사를 잘 써달라고 부탁해야지. 여기 온 분들이 기자지 시청자냐. 아유 병신"이라고 욕설까지 던졌다.
'욕 잘하는 할머니'라는 이미지를 가진 만큼 악의 없이 내뱉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타 방송사 카메라까지 있는 판국에 이런 식의 언행은 적절치 못했다. 어쨌든 연예계 대표 원로 스타 두 사람의 철딱서니 없는 돌발 행동이 방송계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든 사건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방송-연예계 전반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우스갯거리다.
◆안하무인 '선배'들 행동에 후배들만 몸살
유독 조영남과 김수미만 그런 게 아니다. 대중문화계 전반에 후배 괴롭히는, 또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선배'들이 꽤나 많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내뱉은 발언으로 타인을 힘들게 하거나 '선배 대우'를 바라며 동료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앞서 원로배우 신성일도 자서전을 발표하며 과거 연애사를 가감 없이 밝혀 부인 엄앵란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자신을 거쳐 갔다던 여러 여성들의 실명까지 거론해 당사자들을 놀라게 했다. 관련 인터뷰를 통해서도 "엄앵란과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지금도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있다" 등 파격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스로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정력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피카소까지 거론하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은데 왜 그들을 사랑하면 안 되냐"고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사고방식을 강조했지만 논란을 피할 순 없었다.
50대 배우 김부선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수준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동료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돌발 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게 여러 차례다. 지난 2012년에는 SBS '강심장'에 출연해 돌연 정을영 PD와 배우 박정수의 동거 사실을 공개해 구설에 올랐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라 하더라도 소문의 주인공이 아닌 제3자가 예능에서 재미를 주기 위해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는 자체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영화계에는 '선배 대우'를 외치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원로 감독들이 많다. 원로들을 위주로 구성된 영화인협회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대종상영화제를 주최하면서 각종 비리를 일삼고 국내에서 가장 전통 있는 시상식에 '낯 뜨거운 행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각종 문화행사장에 우르르 나타나 선배 대우를 받으려 한다.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상 등 대형 시상식 주최 측에 수십 장의 입장권을 요청하다 타협이 안 되면 "젊은 것들이 원로를 무시한다"고 욕설을 곁들여 호통을 치는 게 다반사다. 실제로 대종상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요직에 있던 정인엽 감독 등 주요 인사들이 비리로 인해 기소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40대 배우 중에도 '선배 대우'를 바라며 객기를 부리는 이들이 있다. 명문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파 이미지를 굳힌 한 남자배우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신의 이름을 '첫 번째'로 내세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포스터 등 홍보물과 크레딧에는 꼭 첫 번째로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매번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건 사실이지만 후배 연기자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분명한 상황에 처해도 '그래도 내가 선배'라며 양보를 강요해 관계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나이를 무기로 예의 없는 행동을 일삼는 '선배'들이 늘고 있는 세상이다. 존경심이란 절대로 요구하거나 강요해서 주입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 '나를 돌아봐'. 단순히 프로그램 제목으로 이해할 게 아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세상의 모든 '선배'들이 새겨둬야 할 문장이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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