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새論새評] 나라 생각 좀 하자

입력 2015-07-16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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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 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자원외교 한답시고 혈세 40조 이상 날려

역대정권 업적에도 이명박 정권만 후퇴

경제민주화 없는 '창조경제'는 예산 낭비

진보·보수가 함께 개혁할 미래는 없나?

감사원에서 자원외교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이명박(MB) 정권에서 자원외교에 투입한 예산이 무려 32조원, 그중에서 이미 13조원 가까이 손실로 확정됐단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체결된 계약 때문에 앞으로도 46조원 이상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점. 결국 80조원 가까이 자원외교에 쏟아부은 셈이다. 현재의 회수율로 환산할 때, 40조원 이상의 혈세를 허공으로 날린 셈이다. 거기에 4대강사업으로 이미 날린 22조원을 추가로 기억해야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역대 정권은 나름대로 업적을 남겼다. 바로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를 완수했고, 전두환 정권은 강압 통치 속에서도 경제를 자율화했다. 노태우 정권은 탈냉전의 흐름에 맞춰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IMF 사태로 좌초했지만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김대중 정권은 '지식기반경제'를 주창하며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변모시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대통령으로, 평등한 네트워크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돌이켜 보건대, 그 많은 굴곡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이렇게 꾸준히 전진해 온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어지는 이명박 정권부터 우리 사회는 제자리걸음을, 아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변모를 완수했다. 엄청난 거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때 만들어진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10년 동안 우리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는 데에 힘이 되어 주었다. 이명박 정권이 제 정신이라면, 그 이후를 계획했어야 한다.

하지만 MB는 무엇을 했는가? 홀연히 나타나서는 부지런히 삽질을 해 사회를 1970, 80년대의 개발도상국으로 되돌려 놨다. 예를 들어, 그가 경제 회생의 비결로 밀어붙인 사업을 보자. 자원외교와 4대강사업, 즉 1차산업과 2차산업이다. 한마디로, MB에게는 불행히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통째로 누락된 비전을 대신해 준 것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주력산업이었던 토목경제였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고도성장기의 향수로 대신해 버린 것이다.

'경기 살리기'를 '경제 살리기'로 아는 그가 한 것은 32조원과 22조원의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 성장률을 올리는 것. 그렇다면 성장률은 올랐는가? 불행히도 그가 받아 든 경제성적표는 자기들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놀렸던 노무현 시절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경제도 성숙하여 그저 투입량을 늘리기만 해도 성장하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 5년 후에 남은 것은 더 이상 손쓰기 힘들 정도로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였다.

박근혜 후보는 적어도 선거전에서는 제대로 해법을 내놨었다.

사회복지와 경제민주화. 문제의 해법은 이미 2012년 대선 때 마련됐다. 제1야당이나 진보정당에서 그 의제를 거부할 리 없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의지만 있었다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우리 사회와 경제의 혁신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몇 달 후 '사회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아예 말까지 사라지고 말았다. 부랴부랴 강조점을 '창조경제'로 옮겼으나, 경제민주화 없는 창조경제란 순수 예산낭비일 수밖에 없다.

MB가 우리 경제를 1970년대로 되돌렸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으로 모자랐던지 우리 정치마저 1970년대로 되돌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박수로 숙청하는 장면은 1970년대 유정회 의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지난 집권 2년 6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보자. 윤창중 사태, 총리 및 장관 후보들 줄 낙마,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와 십상시 사건, 성완종 사건과 메르스 사태, 다시 국정원 도청사건. 이게 나라 꼴인가?

이 암울함 속에서도 그나마 미래를 보여주는 텍스트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정의당 조성주 후보의 출마 선언, 다른 하나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이다. 이들의 꿈처럼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개혁하고, 함께 대화하며, 함께 미래로 가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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