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효과를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였다. 학년당 40여 명이 전부였던 작은 시골마을이었기에 마을 사람들 누구나 서로 잘 알았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동네에서 그 남자아이의 아버지를 만나서는 아주 똑똑한 딸을 두었다고 칭찬을 듣고 온 것이다. 일기를 들킨 것보다 더 부끄러워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말로 다시 전해진 그 칭찬을 듣는 순간 아주 고마운 사람을 떠올리듯 책을 떠올렸다. 독서를 통해 배운 단어들의 공이 크다는 것은 분명했다.
매료되었던 첫 책에 대한 기억은 세계전집 등을 한 질로 판매하는 방문판매 아주머니에게서 시작된다. "아이고, 우리는 안 삽니다"라며 손사래 치는 어머니께 사달라고 졸랐고, 전 세계의 각종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 전집은 방 한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흔히 아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동화는 없었고, 어쩐지 귀결이 석연치 않거나 어딘지 이상한 이야기들뿐이었지만 재밌어하며 여러 번을 반복해 읽었다. 아직까지도 그때 읽었던 이야기 몇 가지는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이야기에 빠져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작가 연보나 해설 등은 읽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나의 느려 터진 읽기 속도에 조바심도 냈다. 시간이 가는 동안 책을 읽는 방식이 변했다. 어떤 때는 단 한 줄도 놓치지 않으리라는 욕심으로 '독서'가 학습이던 때가 있었다.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부터 인사말이나 추천사, 비평까지 단 한자도 빼놓지 않고 마스터하리라는 전투적 태도로 책을 읽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어떤 책들은 심지어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고 읽기도 하지만, 그렇게 각 잡고 시작한 책읽기는 오히려 그 강박 때문에 책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지치게 하고 만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닌지라 수많은 독서광들 앞에서 감히 독서나 책에 대해 말하기 부끄럽기는 하지만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책을 추천하는 일이 잦다. 책방을 방문한 이들에게 보유하고 있는 책 중 어울릴 만한 책을 권하기도 하고, 멋진 책을 만나게 되면 소문내고 싶은 욕심에 지인에게 읽으라고 강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이가 나의 추천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갖게 되는 일이다.
'독서'라는 말이 주는 감각은 각 잡고 공부하듯 읽는 풍경보다 늦은 밤 불빛이 새어나갈까 이불 속에 스탠드 켜놓고 몰래 보는 풍경이 내게는 더 가깝다. 그래서 첫 장부터 차례로 보기보다는 아무 장이나 마구 펴서 읽고, 나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에는 낙서를(물론 대부분의 낙서는 한 해만 지나면 떠올리기 민망한 과거인 '흑역사'가 되고 말지만) 휘갈기고, 또 친구와 한 장씩 번갈아 읽으면서 각자의 상상을 붙여 수다 떨고, 본문에 나오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까지 곁들이면, 어느새 헤어 나올 수 없는 책 삼매경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힙합, 전통주, 심지어 사랑까지 책으로 배우는 '책덕후'가 되고 만다. 게다가 덤으로 (어린 시절에 그랬듯) 멋진 연애편지를 잘 쓸 수 있는 독서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김인혜 독립출판물서점 더폴락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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