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보안에 투자하기 만만찮다" 주머니 빠듯 …정보 잃어도 '영업비밀' 인정 못받아
대구경찰청은 이달 3일 지역 중견기업의 산업용 보일러 설계도면 등 산업기술을 빼돌려 동종 업체를 세우는 등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로 전 영업이사 A(45)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경북 한 보일러 제작업체에 입사한 뒤 지난해 3월 퇴사하면서 이 업체가 약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보일러 설계도면, 전기제어 프로그램 등을 외장용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유출하고서 같은 해 5월 대구에 동종업체를 설립해 정보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산업기술 유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중소기업들은 실제로는 핵심 기술임에도 법률상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해 기술을 뺏기고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업비밀이란? '공개되지 않은 독자적 기술'경영 정보와 노하우'
부정경쟁방지법(이하 부경법) 등에 따르면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비 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지니며(경제적 유용성)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비밀 관리성) 기술'경영 정보를 일컫는다. 특허권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기술적 정보,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영업상의 아이디어 등도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제3자가 그와 같은 기술'경영 정보를 자체 개발하지 않는 한 소유자가 영구히 독점할 수 있다.
특허권자가 기술 독점권을 일정 기간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영업비밀은 제3자가 이를 취득하고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경법은 가해 기업에 영업금지'손해배상 등 민사적 처벌과 더불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또는 재산상 이득액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벌금형을 내린다.
그러나 관련법에 따라 중요 정보가 영업비밀임을 인정받으려면 해당 기업이 이를 '비밀'로 철저히 관리했는지(비밀 관리성)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관리규정에 따라 영업비밀을 분류'지정'고지하는 등 그 정보를 비밀이라고 명시할 것 ▷반출'복제를 제한하고 암호를 설정하는 등 정보 접근 대상'방법을 제한할 것 ▷평소 보안교육을 실시하고 영업비밀 준수 및 경업(競業) 금지 서약서를 작성하는 등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 준수 의무를 부과할 것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에 대해 지역 한 금속 제조업체 임원은 "중소기업은 기술 개발에 들이는 돈도 큰데 정보 보안에 또 다른 돈을 투자하기 만만찮다. 직원이 수십 명 수준이니 정보 접근 권한을 일일이 구분짓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정보 가치 높아도 철통 보안 없으면 '영업비밀' 인정받기 어려워
지난해 특허청이 국내 중소기업 800개사와 해외 진출 기업 20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 기업의 67.2%가 영업비밀을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종류별로는 연구개발 노트 및 신제품 아이디어(52.8%, 복수응답), 생산'제조법(51.9%)이 가장 많았다. 또 국내 소재 중소기업의 9.4%, 해외 진출 기업의 14.6%가 영업비밀 유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평균 피해액은 영업비밀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설계도의 경우 국내는 13억2천만원, 해외는 7억원으로 나타났다.
대구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구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최근 5년(2010~2014) 동안 경찰에 붙잡힌 산업기술 유출사범은 모두 61명. 피해 기업은 대부분 산업보안에 취약한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비밀관리성을 지키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중요 정보를 유출 당하고도 이를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해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영업비밀 유출사범들 가운데도 '피해자 측 보안 취약'을 근거로 들어 영업비밀 침해 혐의를 벗고 업무상 배임으로만 처벌받는 경우가 있다. 영업비밀 유출 혐의자 가운데 형사 유죄를 피한 이들은 전체의 4분의 1 수준인 23.1%에 이른다.
이 때문에 산업계와 법조계에서는 부경법의 '비밀 관리성'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법원 판례는 '중소기업은 자금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대기업 수준으로 영업비밀을 완벽히 유지'관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이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직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면 중요 정보를 영업비밀로 취급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앞서 2010년 특허청도 제3기관이 영업비밀 문서의 생성 시점 및 원본 여부를 인증하는 '영업비밀 원본 증명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인증된 문서에는 위'변조할 수 없는 '타임스탬프'가 있어 문서를 복제하더라도 선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업계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대구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유출 방지에 힘쓰지 못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릴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혐의를 쉽게 벗지 못하게끔 법을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중소기업의 보안 부담을 덜어 줄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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