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보안 노출…중소기업 눈뜨고 당할 수 밖에

입력 2015-07-15 05:00:00

퇴사한 대표가 노하우 빼돌려 다른 회사 세워…동일한 제품 만들어 판매 100억 피해 입혀

대구경찰청이 3일 경북 한 보일러 전문업체의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이 회사 전 영업이사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압수한 영업비밀 자료들. 대구경찰청 제공
대구경찰청이 3일 경북 한 보일러 전문업체의 설계도면 등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이 회사 전 영업이사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압수한 영업비밀 자료들. 대구경찰청 제공

대구의 한 중소기업이 영업비밀 유출로 인해 100억원대 피해를 입고도 '관리 부실 책임'을 이유로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합금 제조업체인 A사는 1980년대 자체 개발한 기술로 동종 업계에서 국내 1위에 오르며 한때 연 매출 400억원을 기록한 유망 기업이었다. 그러나 2011년 당시 A사 대표이사 X 씨가 사측과의 갈등을 이유로 퇴사하면서 합금 제조 노하우를 빼돌리는 바람에 A사는 연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 줄어드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X 씨는 A사 핵심 직원 30여 명을 채용한 뒤, 일본의 한 합금 전문 중견기업과 손잡고 같은 업종의 B사를 설립했다. 설립 4개월 만에 A사와 동일한 제품을 같은 거래처에 판매하면서 현재 업계 2위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S사는 2012년 B사 X 대표 등 6명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부산지방경찰청에 신고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B사가 A사의 정보를 빼돌린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A사가 유출된 정보를 영업비밀로 철저히 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를 유출해 부당 이익을 취한 X 대표 등 3명만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영업비밀 침해 혐의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A사가 ▷관련자에 대해 보안 교육을 철저히 하지 않은 점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구분하지 않은 점 ▷영업비밀을 기밀이라 규정해 보관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영업비밀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자금력의 한계로 인해 영업 비밀과 핵심 인력 관리 체계를 철저히 마련하지 않았을 뿐, 주요 관계자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영업비밀로 충분히 관리했다"고 반박했다.

A사는 이달 3일 대구고법에 영업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공소를 제기해 달라는 취지로 재정신청을 했다. A사 측은 2013년 대구고법이 이 기업 원료배합법 등을 영업비밀로 인정한 점, 앞서 여러 판례에서 대법원 등이 중소기업에 대해 비밀 관리 노력의 기준을 낮게 적용한 점 등을 근거로 유출된 정보를 영업비밀로 인정받고자 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비밀 관리 책임을 묻는 것은 초가집에다 최첨단 보안장치를 설치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법원과 검찰이 이처럼 비밀관리 요건을 엄격히 해석한다면 앞으로도 중소기업의 원천 기술이 해외로 끊임없이 유출될 것"이라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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