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주산성 발굴조사 중 드러나…가로 세로 각 5m·깊이 2m 규모
문화재청과 (재)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은 발굴 조사 중인 고령 주산성 사적 제61호에서 백제의 축조기술을 적용한 가야 최초의 대형 목곽고(木槨庫'목재로 만든 저장시설)가 발견됐다고 14일 발표했다.
이번에 발견된 대형 목곽고는 6세기 중엽 백제의 축조기술과 도량형을 적용해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령군 대가야읍에 위치한 주산성은 6세기 전반에 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성으로 정상부를 둘러싼 내성과 그 바깥에 있는 외성으로 구성된 대가야의 석축산성이다.
주산성 목곽고는 규모가 가로'세로 각 5m, 깊이 2m다. 가로'세로 각 8m, 깊이 3.5m의 정사각형 굴을 파낸 뒤 가장자리에 석축을 쌓고 석축과 목곽 사이와 바닥 위쪽을 1m 이상 점토로 채워넣어 만들었다.
이처럼 목곽고 주변을 점토로 메운 이유는 방수 기능을 강화하고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러한 목곽고는 공주 공산성, 대전 계족산성, 이천 설성산성, 금산 백령산성, 대전 월평동 유적 등 백제 권역에서 주로 발굴됐고, 가야 권역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목곽고에 사용된 도량형이 백제에서 쓰인 남조척(1척=25㎝)이라는 점을 볼 때 백제 기술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목곽고에서는 신라가 대가야를 병합한 뒤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인 소토(燒土)와 목탄, 6세기 후반 신라에서 제작된 단각고배(短脚高杯'짧은 굽다리 접시)편도 출토됐다.
목곽고가 축조된 6세기 중엽은 대가야가 백제와 연합해 신라와 대치를 하던 중 관산성 전투(554년)에서 패배한 후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시점이다. 따라서 이 시기 대가야는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영현 (재)대동문화재연구원장은 "그동안 주로 묘제에 한정돼 진행되던 대가야 역사 연구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며 "6세기 중엽 전후의 대가야 정치적 상황과 백제 및 신라의 대외적 관계'문화교류 등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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